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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 관리는 '땀' 관리가 기본

글 : 변성호 / 사진 : 블랙야크 글로벌 팀(사진설명, 김정배 팀장)

지난 글에서 레이어링의 기본적인 방법과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어느 해보다 따듯한 겨울에서 갑작스럽게 한파가 몰아치며 한겨울로 변한 아침이다. 이미 1000미터 이상의 정상 부위에는 이른 아침이면 상고대를 감상할 수 있고 대부분의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에는 이미 첫눈이 내렸다. 본격적인 겨울 등산 시즌이 시작됐고 사고도 증가하는 시기다. 특히 체온조절에 실패해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고자가 자주 발생하는 시기다.

겨울 등산은 특히 효율적인 레이어링이 중요하다. 오늘은 필자가 격은 사고 사례를 통해 겨울 등산 시 체온관리에 대해 알아본다.

오래전 일도 아니다. 불과 몇 해전 태백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와 동료들은 1월의 추위와 눈 꽃을 만끽하며 태백산을 오르고 있었고 정상 부근에 머무르고 있었다. 늘 있는 일이지만 태백산 능선의 칼바람은 얼어붙은 나뭇가지들을 춤추게 할 만큼 강했고 햇빛은 강렬해 상고대는 반짝였다. 이미 내린 눈은 발목까지 눈에 묻혔고 많은 곳은 무릎까지 빠지는 상황이었다. 강한 추위만 아니라면 환상적인 겨울 산행이었지만 정상 부근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아침 7시 즈음 해뜨기 직전 우리가 출발한 유일사 쪽은 바람이 없었지만 강추위로 영하 16도였다. 새해 첫 토요일이었던 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신년을 맞아 각자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태백산을 찾았고 오르는 내내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다. 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우리는 병목 구간을 막힘없이 통과하고 정상에서 바람을 피해 여유로운 커피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무전기를 통해 다급한 상황이 전달되고 있었다. 유일사 방향의 능선상에서 한 사람의 등산객이 거동이 불가능한 상황에 빠졌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계속 산행 중이었고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우리는 여유로운 시간을 더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무전기에서는 상황의 심각성이 전해졌다.

"정신이 없다. 말을 하지 않는다"

나와 동료들은 급히 짐을 꾸려 가벼운 차림으로 뛰다시피 유일사 쪽으로 달려내려갔다. 이내 우리는 현장에 도착했고 길가에 누워 있는 한 등산객을 발견했다.

상황은 심각했다. 주변에 웅성이고 있는 산행객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고 그중에는 안절부절 하는 사고자의 부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고자는 눈을 감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와 동료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저체온증 환자라고 판단했다. 눈밭에 누워있던 환자를 일으켜 매트리스에 눕히고 환자의 겉옷과 다운재킷을 벗기자 땀에 젖은 내복이 보였다. 젖은 옷을 모두 벗기고 내 배낭속에서 마른 옷과 다운재킷을 입혔다. 동료들은 일단 모두 달라붙어 사고자의 팔과 다리를 마사지하고 손발을 부비며 최대한 체온을 올리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 다른 동료들은 119에 사고 상황을 알렸다. 119에서는 강풍으로 헬리콥터을 보낼 수 없는 상황임을 설명했고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유일사 쪽으로 사고자를 옮겨 줄 것을 당부했다.

나와 동료들은 번갈아 가며 업거나 부축한 상태로 뛰다시피 산을 내려왔다. 중간중간 사고자를 체크하고 뜨거운 물을 마시게 하고 핫팩을 수시로 바꿔가며 체온을 유지한 상태로 유일사 입구까지 내려왔고 대기 중인 119 구급대에 환자를 인계했다.

그 후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그 사고자는 무사히 체온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일은 왜 일어났을까? 장비가 부족했을까?

아니다.

이 사고는 오히려 장비가 너무 과해서 일어난 사고였다. 단지 그 장비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사고자를 이송하면서 그 부인과 나눈 대화를 토대로 사고를 재구성해 보면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부인은 평소 가끔 등산을 하는 사람이지만 남편은 등산이 처음이나 다름없었거나 몇 년 만에 산행에 나섰다.
  2. 부인이 태백산으로 눈 구경을 가자고 제안했고 주저하는 남편을 위해 백화점에서 고가의 다운재킷과 고어텍스재킷, 등산 바지 등을 장만해 줬다. 물론 등산화와 모자, 장갑 등 그가 갖춘 장비는 나무랄데가 없었다.
  3. 그들은 강남에서 안내 산악회 버스를 타고 유일사에서 내렸고 등산을 시작한 시간은 가장 추운 7시 경이었다.
  4. 따뜻한 버스에서 내리자 영하 16도의 강한 추위에 움츠러든 사고자는 그가 가진 모든 옷을 껴입고 있는 상태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아직 사람들이 많은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같은 버스에서 내린 산행객들은 발 빠르게 움직여 앞서나갔고 뒤처진 사고자는 부인과 함께 최대한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
  5. 이내 온몸은 체온이 올라갔고 땀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사고자는 옷을 벗거나 심지어는 모자를 벗을 생각도 못 하고 일행을 따라잡기에 바빴다. 일행들이 쉬고 있는 지점에 이르면 다시 출발하고 그러기를 반복하며 충분한 휴식이나 겉옷을 벗거나 체온을 조절할 기회가 없었다.
  6. 능선으로 접어든 사이 병목구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사이 체온이 떨어졌고 더구나 사고자는 다리에 쥐가 난다며 등산로 한쪽의 한적한 공간으로 피해 주저앉았다.
  7. 하산하던 사람들이 발견하고 쥐가 난 사고자를 눈밭에 눕히고 다리를 들어 올려 스트레칭을 시도했다.
  8.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강한 바람이 불고 있는 상태에서 눈밭에 등을 대고 눕자 체온은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9. 10분이 지나지 않아 사고자가 말을 더듬는 단계가 되었고 말이 없어지기 시작하자 쥐가 났다며 도움을 주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하산해버렸다.
  10. 더 이상 적극적인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 방치되던 중 우리 일행을 만났고 이송되었다.

사고 과정을 보면 사고자는 등산 경험이 전혀 없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본인의 페이스로 산행을 하며 체력과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고 일행들의 속도를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호흡은 거칠었을 것이고 배낭을 멘 등에서부터 땀이 나기 시작해 겨드랑이와 머리까지 땀이 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자는 옷을 벗거나 모자를 벗는 등의 체온조절을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처음 출발한 상태 그대로 다운재킷과 고어텍스재킷까지 착용하고 산행을 계속했다. 일행이 쉬는 장소에 도착하면 다시 일행들은 출발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일행을 따라잡느라 체력을 소진하고 다리 근육은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무리한 산행을 하던 사고자는 능선 초입으로 들어서는 즈음하여 다리에 쥐가 나 잠시 걷다 쉬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강한 바람이 몰아치면서 체온은 떨어지게 된다. 이미 많은 땀을 흘린 상태에서 움직이지 못하자 땀에 젖은 옷으로 인해 추위를 느낄 만큼 체온이 떨어진 사고자는 눈밭에 엉덩이를 깔고 앉기를 반복한다.

이미 체온이 덜어지고 추위를 느끼는 사고자를 눈밭에 뉘고 다리를 들어올리는 과정에서 눈과 접촉한 등에서 급속도로 체온이 떨어지고 영하 20도에 이르는 체감온도의 추위에서 10여 분이 지나자 사고자는 저체온증 초기 상태에 진입하면서 의식이 흐려지게 되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땀' 조절 실패가 사고의 원인

우리는 일상적으로 운동할 때 땀을 흘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겨울 등산에서 땀은 최대한 적게 흘려야 하고 흘리더라고 빨리 밖으로 배출시켜 말려야 한다. 모든 등산복은 이러한 땀 조절을 염두에 두고 만든다.

사고자의 등산복 착용 상태는 매우 잘 구성되어 있었다. 내의와 적당한 세컨드 레이어 그리고 경량이상의 다운재킷과 마지막에 고어텍스재킷을 입었다. 바지도 보온 성능이 좋은 바지를 갖추어 입었다. 단지, 이 사고자는 등산의류를 입는 것만 알고 벗는 것은 몰랐다. 체온의 변화에 따라 입고 벗기를 반복하며 체온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레이어링은 입고 벗고 또 입기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사고자가 출발하면서 고어텍스재킷만 벗었더라면, 또는 경량 다운재킷을 벗고 고어텍스재킷을 입었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체력에 맞는 속도로 걸으면서 말이다. 겉에 입은 고어텍스재킷은 바람을 막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많은 땀을 흘리는 상황에서 땀을 밖으로 배출하는 데는 장애가 된다. 수증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고어텍스의 투습 기능은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영하 20도 이하의 기온에서는 수증기가 안쪽에서 결로 되면서 얼어붙어 얼음이 어는 경우가 있어 오히려 체온을 유지하는데 장애가 된다. 당시 사고자의 등 쪽에 얼음이 소량 끼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 고어텍스 재킷은 체온을 뺏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사고자는 차에서 내려 즉지 또는 유일사 언덕길을 걸다가 땀이 나는 것을 느끼는 즈음에는 고어텍스 재킷을 벗어 배낭에 집어넣고 심지어는 경량 다운까지 벗어 약간 추운 상태에서 산행을 했어야 한다. 능선의 강한 바람을 만났을 때 고어택스재킷을 입었더라면 체온을 보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비싼 옷도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않는다. 따라서 등산시 체온 변화와 외부 기온을 고려하여 계속 입고 벗기를 반복하는 것은 기본이다.

의류도 중요하지만 장갑은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겨울 필수 장비이다. 신체의 가장 말단인 손과 발은 동상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덥기 전에 벗고 춥기 전에 입자!

일상생활에서도 더우면 옷을 벗고 추우면 입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하지만 산에서는 지속적으로 걷는 과정에서 옷을 벗고 입기를 미루는 경우가 많다. 특히 등산 초보자들은 체력 소모가 심한 상황에서 귀찮거나 힘들다는 이유에서 입고 벗기를 미루기도 하고 덥거나 추운 상황을 참으며 산행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더워서 땀이 나거나 추워서 몸이 움츠려 든다면 걸음을 멈추고 즉시 입거나 벗기를 통해 체온을 보존해야 한다. 최소한의 땀을 흘리며 걷는 것이 겨울 산행에서는 기본이다.

더 경험 있는 경험자라면 한 발 더 앞서 등산로의 경사나 바람과 기온을 고려하여 덥기 전에 벗고 춥기 전에 입는 레이어링으로 더 효과적인 체온조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사고의 사고자는 운 좋게 빠른 시간 내에 응급 조치를 받고 119에 인계되어 체온을 회복하고 무사할 수 있었다. 좀 더 나쁜 날씨였거나 하산에 많이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무사하기 힘들 수도 있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모든 상황은 안정적이고 평온하다. 그렇지만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겉잡을 수 없이 상황은 악화 된다.

저체온증이 시작되고 근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이 있더라도 그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 같이 위험해 빠질 수도 있다. 기상악화로 헬기를 보낼 수 없거나 폭설로 구급차가 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물에 젖어 있을 수도 있다. 사고가 나는 상황에서는 모든 조건은 최악으로 치닫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미리 준비하고 충분히 대비해 사고 상황에 빠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겨울산은 아름답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운 산에는 더 큰 위험요소가 있다. 미리 준비하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는 등산을 준비한다면 즐거운 산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