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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김가희’의 셰르파 도전기 bac people

글 : 민병준 / 사진 : 변성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요즘 인기 드라마다. 처음 인터뷰이 경력을 들었을 때 우영우가 떠올랐다. 30대 중후반의 여성, 블랙야크 셰르파, 트레일러너. 직업은 변호사. 키워드들에서 셰르파와 변호사의 접점이 낯설었고, 등산 이력, 체력도 궁금했다. 약속을 잡은 날, 장마 전선도 “비를 뿌려? 말아?” 하며 두 얼굴로 다가왔다. 도봉산 자락에서 김가희 씨를 만났다. 초반은 블랙야크 셰르파로.

직업은 변호사이면서, 블랙야크 셰르파로 활동 중이신데요. 지원 동기가 참 궁금합니다.

‘명산 100’과의 인연입니다. 개인적으로 ‘명산 100’은 2021년 5월, 북한산이 첫 인증이었죠. 작년이네요. 조금 늦지요? (웃음) 이전에도 ‘명산 100’ 인증이라는 게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앱을 깔고 시작한 거는 21년 5월이랍니다. 그렇게 한참 BAC 앱을 들락날락하다가 우연히 블랙야크 셰르파 모집 공지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블랙야크 셰르파에 대해서는 평소 얼마나 알고 계셨는지요.

(웃음) 셰르파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었어요. 만나본 적도 없고요. 이런저런 조사를 통해 셰르파 활동을 짐작해봤을 뿐이죠.

그런데도 셰르파에 지원하셨군요. 도전 정신이 상당하시네요.

필기시험과 면접, 산행 테스트를 통해 엄격히 선발하는 셰르파 집단이라면 분명 배울 게 많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을 거라는 정도만 짐작했습니다. ‘명산 100’ 인증에 꽂혀있던 시기였고, 좋은 사람들과 산을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본격적인 셰르파 활동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2021년 12월에 시험을 보고, 2022년 1월 발대식 후 활동을 시작했어요. 셰르파 10기인데요. 저를 포함 열일곱 명이 선발됐죠. 근데 코로나19로 활동을 못하던 중에 ‘BAC 클린 도전단’ 활동 제안을 냉큼 받아서 이렇게 함께하고 있습니다. 올해 5월부터네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월 3회 정도 무박 2일로 전국팔도를 다닙니다. 도전단들과 산행을 하면서 클린 활동을 하고 있어요. 대상지요? 해남의 달마산, 영남알프스 고헌산, 사천의 신수도, 통영의 수우도…. 명산100, 섬&산, 백두대간, 정맥 등 BAC 인증지라면 어디든 갑니다. 이미 내력이 깊은 모임이라 다들 산행도 잘하시고 서로 친분도 깊은데, 막내 격인 저를 금방 잘 받아주셨어요.(웃음)

목소리도 씩씩하고, 밝게 잘 웃으셔서 점수를 따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셰르파라는 위치가 봉사하는 자리라 생각되는데요. 활동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도전단 분들보다도 산행 이력도 길지 않고,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능력이 뛰어난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빠르고 가볍고 간소화하면서 효율을 중시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무거운 배낭 메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죠. 그동안은 개인적인 산행만 하다가 다른 사람을 위해 짐을 더 챙기는 마음의 전환이 생긴 것 같아 좋습니다.

클린 마운틴 활동에서 의미를 찾으셨네요.

의미가 있죠. 그냥 다닐 때보다. 쓰레기봉투를 차고 등산스틱 대신 쓰레기 집게를 스틱 삼아서 다니면서 쓰레기를 줍는 일…. 이렇게 다니다 보면 마주치는 다른 등산객 분들이 “감사합니다.” 이러면서 먼저 인사를 하시는데, 오히려 제가 감사해요. 정말 되게 보람도 있고요. 같이 하시는 동료 분들이 워낙 잘하세요. 클린 마운틴 운동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죠.

셰르파로서 클린 마운틴 활동을 하시며 봉사 정신을 잘 실천하고 계시네요. 셰르파 합격 시 변호사라는 직업이 도움이 됐을까요? 감점이 됐을까요?

글쎄요. 큰 영향은 없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저는 셰르파 10기로 신규 선발됐습니다. 이번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 것 같아요. 저 말고도 저랑 같이 면접 봤던 세 살 젊은 지원자도 달리기를 잘하고 BAC 인증 횟수도 저와 비슷한데 함께 합격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10기는 등산 외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도 많이 열린 기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도 셰르파 선발 시 봉사 정신과 함께, 산행 경력이나 체력 등도 많이 따졌을 텐데요.

산에 가면 명산 100 다른 참석자들이 물어봐요. “아이디가 뭐냐”, “혹시 100산 중 몇 개를 했냐”, 하고요. (웃음) 그게 부끄러운데요. 11개 했을 때 셰르파가 됐고요. 지금까지 14개밖에 못 했어요. 그래서 “10개 조금 넘었다”고 하면 다들 놀라셔요. (웃음) 지금은 한 달에도 세 번씩 보니까 뭐라 하지는 않으시는데, 하여튼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거죠.

체력은 좋은 편이신지요.

어릴 때부터 등산을 하면서도 힘들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어요. 태어나서 코피를 한 번도 안 흘려봤어요. 학창시절 날밤을 새우며 공부를 그렇게 해도 코피는 한 번도 안 흘렸어요. (웃음)

그렇군요. 기본 체력도 좋고 어릴 때부터 가족 산행도 하셨군요.

네, 식구들과 어려서부터 캠핑과 산행을 자주 한 편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차산에서 단련했어요. 검단산도 많이 갔고요. 엄마가 김치부침개, 스팸, 갓 지은 밥을 보온도시락에 싸가면 그 식사시간을 그렇게 좋아했어요. 항상 아빠가 대장이었는데, 엄마, 네 살 터울인 남동생도 곧잘 따라다녔습니다.

지금보다 더 젊던 시절의 기억나는 아름다운 산행을 떠올려볼까요?

대학교 2학년 때 학보사 임기가 끝난 뒤였어요. 다른 친구들보다 기말고사가 빨리 끝나서 빠른 여름방학을 맞았는데요, 혼자 무작정 속초로 떠났습니다. 가는 버스 안에서 한 번도 못 가본 설악산 정상을 올라야겠다고 목표를 잡았습니다. 정보도 별로 없었지요. 한계령에서 진입하려고 했는데 입산 시간에 걸려서 속상해하면서 울산바위를 다녀왔어요.

다음 날엔 동기들이 제가 속초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했습니다. 바다에 갈 줄 알았는지 슬립온을 신고 온 친구도 있었는데 제가 대청봉에 갈 거라고 했는데도, 다들 겁도 없이 설악산 소공원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어요. 대피소 예약도 안 하고 올라갔던 것 같은데, 어찌어찌 잠도 잤습니다. 어떤 아저씨께서 라면도 사주셔서 얻어먹으면서 너무 맛있다고 울면서 먹었어요. 먹을 것도 너무 없어서 가방에 있던 커피믹스를 먹으면서 에너지를 만들어 올라갔던 기억이 납니다. 오색 방향으로 내려갈 때는 오이, 사과 등을 얻어먹으면서 걸었어요. 멋모르는 대학생이라는 치트키를 쓰면서 다닌 것 같습니다.

웃기만 할 수 없는 경험이네요. 그럼 기억에 남는 종주산행이 있으신지요.

2021년 9월에 한 화대종주입니다. 당시 지리산은 처음이었는데요. (웃음) 이때 우리 일행은 달리기 동호인 남자 둘, 여자 둘 이렇게 넷이었습니다. 산악회 버스 안에서 가이드께서 참석자들 코스를 확인하는데, 화대종주 지원자가 몇 명 없는 게 수상하긴 했어요. 도착하자마자 쏟아질 듯한 지리산 밤하늘의 별빛을 올려다보고 너무 황홀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가는 지리산인데, 무박에 화대종주라고요? 고생하셨겠네요.

가이드께서 천왕봉에 13시까지 도착 못 하면 중간에 빠져나오라고들 했는데, 13시 30분에 도착했어요. 30분이 지났죠. 한참을 다같이 내려가다가 버스 탑승할 시간이 임박해지자 언니와 제가 남자 둘을 버리고(?), (웃음) 대원사를 향해 뛰었던 것이 아주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남자들 역시 달리기를 좀 하시는 분들이잖아요. 다행히 이들도 버스 출발 10분 전에 정류장에 도착해서 무사히 서울로 복귀할 수 있었어요. 어찌어찌 겨우 해피엔딩이 되었던 에피소드죠. (웃음) 화엄사에서 대원사 버스정류장까지 대략 46km인데, 새벽 2시부터 17시 20분까지 15시간 20분 걸렸네요.

화대종주 후반부인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 달렸어요? 체력이 상당히 좋으시네요.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 덕인가요?

네, 아마도요. 본격적인 트레일러닝 활동은 2019년부터 시작했어요. 입사하고 3년 정도 흘러 회사 생활이 충분히 익숙해진 때죠. 처음부터 트레일러닝이 저와 잘 맞을 것이라고 예감했어요. 지금은 더욱 그렇고요.

트레일러닝 마니아시군요. 그렇다면 산에서 달릴 때의 기분은 어떤가요.

보통 기록을 중시하는 러너들은 로드나 트랙에서의 여름 혹서기 훈련이 너무 힘들어 산을 찾기도 하는데요, 저는 산에서 달리는 행위 자체가 너무 즐거워요. 올랐다가 내려가는 변형 있는 코스가 마라톤 풀코스보다 덜 힘들게 느껴져요. 대회에 나가보면 저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을 더 잘 타는 편인데요, 오르막에서 뒤처지더라도 너무 떨어지지만 않으면 앞지른 선수들을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장거리에서 꾸준함의 미덕을 깨우치게 해주는 것 같고요.

트레일러닝과 등산의 차이가 있을까요? 속도 말고요.

등산과는 아무래도 매너와 태도가 다른 것 같기는 해요. 등산을 할 때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초점을 맞춰 준비를 하게 되고, 함께하는 즐거움을 더욱 오롯이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나중에는 혼자서 백패킹 차림으로 BPL(Backpacking Light, 가벼운 백패킹), LNT(Leave No Trace, 흔적 없이 떠나기) 정신을 실천하면서 백두대간을 걸어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이러면 트레일러닝과 등산의 중간쯤? 산은 이렇게 여러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고, 그때마다 새로운 듯합니다.

어렵겠지만 괜찮은 시도 같은데요, 준비를 많이 하셔야겠네요. 등산 외에 아웃도어 활동의 경력도 궁금하네요.

2019년에 춘천마라톤 풀코스(3:33:35)를 뛰었어요. 2021년엔 트레일러닝 하프코스 44km(영남알프스 하이트레일 5피크 8:19:09 여성 6위) 경험도 있고요. 달리기를 취미로 하고 풀코스 데뷔하자마자 코로나19로 대회가 거의 열리지 않아서 참가 경험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닙니다. 스쿠버다이빙은 겨우 로그 30회를 넘긴 초보죠. 2017년 태국 꼬따오에서 오픈워터, 어드밴스 자격을 딴 뒤 국내에서 조금씩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다이빙을 하는 정도? 서핑은 2020년 입문했고, 아직도 파도를 겨우 직선으로 타는 수준이랍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선 바다를 너무너무 사랑하게 되었어요.

바다를 사랑하게 됐다고요? 유치한 질문인데 산이 좋아요, 바다가 좋아요?

(웃음) 그래도 산이냐, 바다냐 묻는다면 저는 산을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등산이 다른 일상적인 운동과 다른 점은 자연 속으로 진입한다는 측면에서 시작과 끝이 확실하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기분 전환도 확실하고요. 저는 소원도 산에서 빌어요.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수능 D-100, 무엇인가 성취해서 다른 일에 용기를 얻고 싶었던 때, 홀로 새벽같이 지하철을 타고 아차산에 다녀오곤 했었네요.

평소 체력 단련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집에서 회사까지 한 10km 정도 거리가 되는데 자전거 타고 출퇴근을 많이 했습니다. 한강 따라서. 그래서 달리기 시작하기 전부터 자전거로 체력 단련이 좀 됐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엄마 아빠 따라 산에 많이 다녔고. 지금도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 타고 다니고요.

자전거를 좋아하시네요. 자전거 경험을 들려주세요.

자전거 무전여행의 핏줄은 옛날부터 흘렀는데 그게 지금 열정의 근원 같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혼자 집에서 춘천까지, 따릉이보다 못한 수준의 자전거를 타고 2박 3일. 고등학교 동창 4명이랑 자전거를 처음 타는 일행도 있었는데, 친구 집에서 대부도까지 2박 3일. 대학교 2학년 때 속초를 나 홀로 2박 3일…. 그때는 막 고등학교 졸업했을 때고 진짜 뭔가 장비 갖춰서 하는 게 아니라 자전거도 집에 있는 거, 체인 안 빠지고 고장 안 난 게 정말 기적일 정도로 그런 걸 타고 다니고 그랬었어요.

혼자서 무작정 자전거 여행을 즐기셨군요. 외국 여행 경험은요.

대학교 4학년 때 까미노 데 산티아고(성지순례길)을 포함해 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피레네산맥을 올랐고요. 백팩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양말에 샌들을 신고 알프스를 다녀왔어요.

유럽 여행 중 백팩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요?

1년 반 동안 휴학하고 모은 돈으로 유럽여행을 한 2개월 한 건데, 중간에 가방을 잃어버렸었거든요. 통째로. 진짜 가장 큰 백팩을 잃어버리고. 이탈리아요? 아니요. 독일에서 잃어버렸어요. 함부르크. 그 치안 좋은 데서 가방 잠깐 내려놓고 주변 둘러보고 돌아오니까 없어진 거죠. 바로 영국을 가야되는데 가방을 찾을 시간이 없었어요. 영국에 갈 유로스타 티켓이 꽤 비쌌거든요. 가방을 찾으러 다니지도 못하고 울고불고 있는데, 그 앞에 위치한 호텔의 매니저가 저를 위로하면서 리셉션에 있던 장식용 사과와 택시비를 주면서 떠나보냈어요.

이런,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그런 상태로 가방 없이 다니게 된 거예요. 차편에 떠밀려서. 다행히 허리에 차는 작은 가방에 여권과 유레일패스가 남아 있었어요. 하지만 현금도 잃어버리고 노트북이나 카메라, 옷가지들을 다 잃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잘 못먹고, 부지런히 이동만 하는 헝그리 여행이 시작됐죠.

아슬아슬한 경험이네요. 그러면 귀국은 무사히 잘하셨나요?

빈손으로 다니니까 검은 비닐봉지에 양말 같은 거 넣어서 다니고 그랬지요. 나중에 귀국할 때 비닐봉지 두 개만 들고 들어왔거든요. 근데 엄마가 외할머니랑 저를 마중 나오신 거예요. 제가 1년 넘게 외국 생활을 하다 들어간 거니까 제 짐을 실어주려고 카트 밀고 오셨는데, 얘가 두 손에 비닐봉지밖에 없어? 두 분이 엄청 놀라셨죠.(웃음)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무작정 여행 말고 학문적으로는….

2003년에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 입학했어요. 학창시절에는 졸업 후에 드라마 PD가 되겠다며, 대학 학보사, 홍대 무료 매거진, 소출력 라디오방송국 등에서 기자나 피디, 작가로서 활동을 많이 했어요.

PD가 꿈이었다가 현재 변호사인데요, 그 과정과 업무를 간략히 말씀해주세요.

2008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PD 준비를 몇 년 동안 했습니다. 그러다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2012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어요. 2015년 졸업하면서 4월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했고요. 6개월 연수 기간을 거쳐 2016년부터 4년간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에서 근무했답니다. 그리고 2020년 3월부터는 강남구청에서 근무하고 있죠. 기획예산과 법제팀인데요. 올해부터 행정소송을 함께 수행하고 있고, 조례를 만들면 상위법과 충돌이 있는지 등을 검토하는 업무를 주로 합니다. 표현이 적절한지, 중의적으로 해석되어 모호한 부분은 없는지 등 문구를 수정하고요. 그리고 구청 직원들에게 수시로 법률 관련 자문하는 일을 하죠. 저는 평일 저녁에 나를 위한 시간을 쓸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아웃도어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 성향이라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네요. 변호사와 등산과의 관계랄까,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여성 법조인으로서 전문 분야 외에도 운동에서 특별한 성취를 남기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남성 판사님 중에는 사막마라톤 완주하신 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성 중에는 아직 없다고 격려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2019년 9월부터 달리기 모임인 ‘러너스클럽’ 회장을 맡고 있어요.

변호사 업무도 바쁘실 텐데, 민변 달리기 모임 회장도 맡고, 주말마다 셰르파로서 봉사 활동도 하고, 트레일러너 대회도 나가고…. 빠듯할 주말이 참 궁금하네요.

네, 주중엔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요. 셰르파로서는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토요일날 산행하는 클린 도전단 활동을 하죠. ‘불금’에 출발해서 토요일 저녁에 오는 게 은근히 어려워요. 체력적으로나 사람들 만날 시간을 활용하는 측면에서도요. 이런 고충(?)을 선배님들께서도 알아주시겠죠? (웃음) 그래도 클린 도전단과 주말을 함께 하는 즐거움이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일요일은 가족을 만나거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요. 연애도 정말 틈틈이 깨알같이 해나가려고 합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안 드릴 수가 없네요. 요새 인기 드라마 <우영우> 보시나요? 그 ‘이상한 변호사’….

네, 너무 잘 만들었더라고요. 판타지가 다소 있지만, 재판 에피소드들이 되게 리얼해요. 법무법인에서 할 수 있는 소송의 종류로 민사, 형사, 행정이 다 들어가 있고 지금까지 나온 내용만 보면 정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결론에 리얼리티가 살아있어요. 작가가 대본을 잘 쓰신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 법정 드라마 나왔을 때, 2013년에 나왔나? 이거 잘 만들었다고 법조계에서 칭찬이 자자했거든요. 그 이후로 간만에 잘 만든 법정 드라마 같아요.

그렇군요. 잘 만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김가희 변호사께서도 꿈꾸고 계신 ‘BPL, LNT 실천 백두대간 종주’ 계획을 잘 짜서 무사히 이뤄내길 바라겠습니다.

네, 차근차근 준비해서 꼭 실천을 하겠습니다.

지면이 지면인지라 인터뷰는 산과 아웃도어 관련 대화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셰르파요, 트레일러너인 김가희 씨는 몇 년 전 주민소송의 역사를 새로 쓸 대법원 판례를 만드는 데 일조한 능력 있는 법조인이면서 민변 활동도 열심히 하는 아웃도어 마니아 ‘김변’이었다. 그의 소망대로 ‘백두대간 BPL, LNT 종주’, 그리고 ‘사막 마라톤을 도전한 최초 여성 법조인’ 등의 목표를 안전하게 이뤄내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