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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구간 속리산 백두대간 에코트레일. 09

표지 :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왕봉에 올라서자 속리산의 진가가 드러났다. 정상다운 폭발적인 힘으로 지나온 백두대간 줄기를 단순한 선으로 보여 주었다. 경지에 오른 것일수록 이토록 단순 명확한 것을.

글 월간산 신준범 기자 / 사진 주민욱 기자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는데 세속이 산을 떠나는구나!

개 소리였다. 이렇게 깊은 산꼭대기에, 그것도 해질녘에 개 짖는 소리라니, 이상했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긴 비탈을 온 몸으로 받아 삼키자 나타난 바위 꼭대기에 그가 있었다. 피앗재 산장지기가 손님인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산장에서 키우는 붙임성 좋은 백구는 우리를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덮치듯 안겨왔다.

형제봉 위에 올라서자 속리산에 온 것이 실감났다. 경치 한 줌 없는 야산 구간만 걷다가 만난 국립공원은 도가 지나쳤다. 아름다움의 정도가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누구랄 것 없이 “우와”하는 소리가 발바닥부터 치고 올라와 튀어나왔다.

천왕봉에서 문장대로 뻗은 유려한 바위 산줄기. 자연이라는 석공이 빚은 솜씨는 실로 속세의 계산을 뛰어넘고 있었다. 마침 시작된 해넘이는 마음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이토록 황홀한 몰락을 본 적 있던가. 첩첩산중 겹쳐진 산줄기는 검은 먹만으로 농도를 조절해 오묘한 수묵화를 그려 놓았고, 하늘은 살아 있는 것처럼 온갖 빛깔을 토해 내고 있었다. 아련하면서 애달픈 그리움에 가까운 감정을 자연이라는 캔버스에 표현해 내고 있었다.

만추의 끝을 붙잡고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는 비조령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진 산줄기.

미세먼지의 침공. 그나마 보은 하늘은 좀 낫다. 새가 나는 모습을 닮았다는 비조령에는 오늘도 새가 없다. 대간꾼들만 모여 표지석 앞에서 인증사진 찍느라 바쁘다. 점심이 훌쩍 지난 시간, 시원하게 “화이팅!”을 손 모아 외치고 입산한다. 블랙야크 권태도·김진희 셰르파와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박용희 국장과 정가인 실장이 함께했다. 형제봉 지나 피앗재까지 간 뒤 하산해 피앗재산장에서 하루 묵고 다시 대간길을 갈 계획이다.

계절감이 소리에서 먼저 온다. 걸을 때마다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바삭 바삭” 산을 울린다. 낙엽에 계단이 묻혀 걸음이 조심스럽다. 누렇고 길쭉한 잎, 8할이 굴참나무 잎이고 떡갈과 상수리 잎이 간혹 섞여 있다.

비조령은 해발 258m, 형제봉은 828m이다. 5㎞ 동안 고도 600m를 올려야 하는 쉽지 않은 산행이다. 주야장천 비탈길에 코를 박고 오르자고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몸이 빨리 풀리며 호흡이 편안해진다. 더 큰 능선으로 올라설 때마다, 무명봉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게임 속 보너스 점수처럼 ‘딩동’하고 성취감이 솟아난다.

그렇게 한 능선을 올라서니 뒤에 툭 튀어나온 바위다. 올라서자 10만 명의 관객이 색색깔 풍선을 들고 바라보는 것만 같다. 비로소 드러나는 단풍의 압도적인 해일이 정지해 있다. 무대 위에 홀로 선 가수처럼 가을을 만끽한다.

야영 터마냥 너른 평지는 ‘못제’라 불리는 고산습지다. 샘터 표시도 있지만 가물어 일대가 바싹 말랐다. 안내판이 없었다면 지나쳤을 법한 작은 습지이지만, 견훤의 설화가 깃들어 있을 정도로 긴 역사를 가진 곳이다. 그만큼 요충지였던 셈이다.

자비 없는 긴 오르막에선 내면의 소리가 더 커진다. 시선은 땅에 가 있지만 마음의 시선은 내면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하는 것부터 어제 나눈 시시콜콜한 대화까지, 불쑥 나타났다가 멀리 사라져간다. 긴 종주는 이래서 좋다. 바쁜 일상 속에 흐트러져 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비조령에서 갈령삼거리까지 2시간 30분 걸렸다. 오르막이 길어서인지 5시간은 산행한 것 같은 기분이다. 국립공원으로의 진입이다. 입장료는 발품으로 짜낸 땀이다. 코가 닿을 듯한 오르막에 고개를 박고 올라서자, 바위가 오뚝한 형제봉 정상이다. 마중 나온 피앗재 산장지기 서성수씨와 그의 충견 백구가 반갑다.

비조령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진 길은 급경사 구간이 많아 거리에 비해 시간 소모가 크다.

조릿대와 신갈나무가 밀림처럼 빽빽한 속리산 주능선.

형제봉 하늘 위로 드라마틱한 노을이 물든다. 산이 꼭 아이맥스 영화관 같다. 이토록 감미로운 고립감이라니, 몰락하는 저 세상 속으로 다가가고 싶지만 이내 어둠이다. 넋을 놓고 해넘이에 취한 대가로 야간산행을 해야 했다. 속리산의 밤은 얼마나 순도가 높은지 숲을 지워버리더니, 내 팔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장막을 깔아 주 었다. 피앗재에서 헤드랜턴의 얇은 빛에 기대어 만수동마을로 내려갔다.

산장지기의 “하늘 한 번 보세요”라는 말에 고개를 드니, 캐나다로키에서 보았던 촘촘한 별무리가 속리산에도 있었다. 아직 초저녁인데 이 정도라니, 속세를 벗어난 산의 진가를 실감한다.

아침이 되자 훤칠하게 솟은 천왕봉이 산장 앞마당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피앗재산장을 뒤로하고 다시 대간에 올라선다. 화전민 터와 은사시나무, 물오리나무, 일본잎갈나무 숲을 지나자 대간 주릉이다. 어제 밤 하산하는 데 한 참 걸린 것 같은데, 올라서는 건 금방이다.

감각이 녹아내리는 황홀한 노을이 형제봉 하늘을 가득 메웠다.

비법정 구간에 막혀 대간길을 버리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험준하게 솟은 천왕봉을 오르는 것이 오늘 숙제다. 미세먼지 경보가 내린 날, 햇볕은 눈치 없이 강렬하다. 바람 한 점 없지만 산행엔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팀원들은 설렜다. 속리산 주릉을 주파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전체로 따지면 가장 달콤한 부위를 맛보는 날이다. 지리산에서 시작된 북진 이후 처음 만난 화려한 바위산이기 때문이다. 된비알이 밀물처럼 몰려오지만, 웃으며 넘어선다. 경치 없는 육봉인 667m봉과 703m봉을 넘어 파죽지세로 돌격한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바위가 오늘 처음으로 시야를 틔워 준다. 섬세하게 빚은 암릉 줄기를 따라 주황으로 물든 사면이 곱다. 저 환한 주황빛은 일본잎깔나무의 향연, 참나무와 섞여 잔치를 벌여놓았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벽, 신성함마저 감도는 저 벽에서 한남금북정맥이 갈라져 나온다. 속리산 천왕봉 남벽이 압도적인 위력으로 나타났다. 충청과 경기 남부를 가르는 젖줄 같은 어머니 산이 여기서 시작된다. 단순히 속리산 최고봉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빗발치는 화살처럼 조릿대 무리가 덮친다. 불규칙적인 오르막길은 그만 항복하라고 겁박하듯 숨을 턱까지 차오르게 한다. 햇살은 여름의 마지막 잔당인양 필사적이다. 속도가 떨어진다. 괜찮다. 멈추지 않으면 된다. 거친 호흡을 뱉어내며 정상에 올라서자, 빅뱅처럼 순간 시야가 터지며 폭발적인 경치가 펼쳐진다. 하늘의 왕다운 일대를 제압하는 압도적인 풍경이 드러난다.

속리산 석문石門을 지나는 김진희 셰르파(앞)와 권태도 셰르파. 대간을 타는 이라면, 속리산을 찾은 이는 반드시 거치는 바위관문이다.

남쪽으로 백두대간 줄기가 펼쳐진다. 지난 몇 달간 걸어온 산들이 검은 선으로 간단명료하게 드러난다. 대담하게 생략된 산 실루엣은 용문산, 황악산, 구병산을 말갈기처럼 싣고 남쪽으로 내달리고 있다. 북쪽의 속리산 주릉은 융기한 화강암과 침식한 퇴적암이 깊은 골짜기와 어우러져 절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우고, 북진한다. 문장대로 가는 길은 기암 전시장이다. 전설 속에 나올법한 영웅호걸 같은 걸출한 바위들이 거인마냥 곳곳에 융기했다. 도롱뇽바위는 초등학교 소풍으로 속리산을 다녀간 아이가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는 긴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바위를 오르고 있다. 물개바위는 하늘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있고, 돌아앉은 원숭이도 여전하다. 바뀐 것이 있다면 산길에 깔린 야자매트뿐이다.

신선대휴게소도 여전하다. 국립공원 음주금지가 시행되었음에도 주능선에서 막걸리를 판매하는 유일한 곳. 속리산 상당수 땅이 법주사 소유인데, 국립공원 지정 이전부터 임대를 받아 영업해 온 휴게소와 산장이 여럿 있다. 법주사는 전국에서 가장 비싼 문화재관람료 4,000원을 받고 있어 지역주민들은 “법주사 때문에 등산객이 줄었다”고 성토하기도 한다.

신선이 살 것만 같은 신비로운 암릉줄기가 펼쳐지는 속리산 주능선.

지난 몇 개월간 풍경 없는 야산 구간을 걸어온 걸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그림 같은 경치가 쉴 틈 없이 펼쳐진다.

바위틈으로 난 독특한 산길을 올라선다. 속리산은 국립공원답게 계단 같은 시설물이 많아 위험한 곳은 거의 없다.

보은군과 충청북도에서도 법주사와 문화재관람료를 폐지하거나 낮추는 협의를 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세속 ‘속俗’ 떠날 ‘리離’를 쓰는 속리산, 풍경은 속세를 벗어난 경지에 있으나 세속의 금전 논리가 산을 지배하고 있다.

바위계단을 올라서자, 선물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문장대文藏臺. 속리산이 특별한 건, 문장대의 힘이 크다. 천왕봉처럼 경치가 트인 봉우리는 많지만, 문장대처럼 산꼭대기에 거인의 공깃돌처럼 단을 쌓은 완벽한 자연 전망대는 드물다. 여기에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피의 군주 세조가 문장대에 올랐더니 오륜을 적은 책이 있어 문장대라 불린다는 기품 있는 전설이 특별함을 더한다.

미세먼지가 기승이지만 문장대의 비범함을 다 가릴 순 없다. 아득한 산줄기의 실루엣이 문장대를 에워싸고 절을 올리고 있다. 이 잘난 거대한 왕관 같은 암봉 아래에 모든 능선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예를 갖춘다. 여기서 대간은 북동으로 방향을 꺾어 밤티재로 이어지지만 비법정구간으로 막혀있다. 새벽에 몰래 지나는 방법으로 종주하는 이들이 많지만, ‘에코 트레일’ 취재산행인 만큼 대간길을 버리고 상주 화북으로 하산한다.

조선 시대의 문인 임제는 속리산에 3년간 머물다 떠나며 쓴 시에서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는데, 세속이 산을 떠나는구나’라고 했다. 대간길을 버리고 떠나는 아쉬움이 속인의 마음을 자꾸만 부여잡는다.

속리산 구간 종주 가이드

비조령에서 상주 화북오송탐방지원센터까지 20㎞이다. 천왕봉까지 가파른 비탈이 많아 당일에 완주하기는 어렵다. 또 천하절경의 속리산을 시간에 쫓기며 앞만 보고 달리기엔 아깝다.

피앗재에서 1.8㎞, 30분을 내려가면 만수리 피앗재 산장이 있어 중간에 구간을 끊기에 알맞다. 비조령에서 피앗재까지 6.5㎞이며 3~4시간 정도 걸린다. 피앗재에서 문장대를 지나 상주 화북오송탐방지원센터까지는 13.6㎞이며 7~8시간 정도 걸린다.

갈령에서 산행을 시작할 경우, 화북오송탐방지원센터까지 총 17㎞이며 10~11시간 정도 걸린다. 국립공원이라 이정표가 적재적소에 있어 길찾기는 쉽다. 신선대휴게소에서는 생수와 막걸리, 도토리묵, 파전, 컵라면 등을 판다. 겨울에는 보통 주말에만 문을 연다.

교통(지역번호 054)

비조령은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 상주터미널에서 화북행 버스를 타고 동관에서 내린 뒤 도로 따라 2㎞ 걸으면 비조령에 닿는다. 동관을 거쳐 화북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 7회(07:40~18:15) 운행한다.

산행이 끝나는 화북오송탐방지원센터에서 버스를 타려면 장암교차로까지 2.3㎞ 걸어 내려와야 한다. 화북에는 택시가 없으므로 화서면 택시를 이용한다.

문의 화서면 택시(533-0633, 535-3030, 533-8333).

숙식(지역번호 054)

비조령에는 식당이나 숙소가 없다. 상주 화남면, 화서면, 화북면사무소 인근에 식당이 있다. 화남면 먹벙(531-3478)은 순대국과 감자탕 전문점. 화서면에 불고기전골(1인분 1만4,000원), 육개장(8,000원), 육회비빔밥(1만 원)이 별미인 명실상감한우화서점(536-6004)과 중국음식점 성수식당(533-0801), 오리요리전문 화령골가든(534-9585) 등이 있다.

비조령과 문장대를 잇는 중간 기점으로 피앗재산장(010-2761-7761)이 있다. 저녁·아침식사와 숙박을 포함한 가격이 1인 4만 원이며, 수고비를 내면 차로 픽업도 가능하다. 인근의 대형 숙소로 국립 속리산말티재자연휴양림(043-543-6282)과 보은군에서 운영하는 충북알프스자연휴양림(043-540-3712), 상주 은척면의 성주봉자연휴양림(541-6512)이 있다.

미니 인터뷰

“대간에 반해 대간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피앗재 산장지기 서성수씨

“원래 피앗재에서 야영을 할 생각이었어요. 비가 많이 와서 어쩔 수 없이 만수리로 하산했는데 동네가 너무 좋더라고요. 대간을 완주하고 나서 아예 이곳으로 귀촌했어요.”

2006년 아내와 함께 백두대간을 완주한 서성수(60세)씨는 대간을 타면서 자연생활에 매료되어 귀촌을 택했다. 당시 40대 후반의 나이였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2007년 피앗재산장을 열었으나 벌이가 되지 않아, 표고버섯 농사가 주업이 되고 민박은 부업이 되었다. 벌이가 많진 않았지만 지출이 적어 10년 넘게 산골에서 살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산골 생활을 글로 풀어내 <수필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정식 수필가이다.

피앗재산장을 찾는 손님은 모두 대간 종주자들이다. 그중에서도 안내산악회 단체팀이 아닌 혼자 종주하거나 2~3명 정도의 소그룹 종주자들이 산장 손님이다. 대체로 화령에서 출발해 피앗재산장에서 1박하고 다음날 속리산을 탄다.

그는 “대간 타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가 월간산과 블랙야크에서 백두대간 종주 기사를 연재하면서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간혹 대간을 타는 외국인들이 이곳에 묵기도 하는데, “왜 이렇게 아름다운 트레일을 한국은 홍보를 하지 않느냐”고 그에게 물어오기도 한다고 했다. 또 “왜 이렇게 좋은 곳에 갈 수 없는 통제구간이 있느냐”는 질문도 들었다. 그는 스스로 대간의 아름다움에 반해 정착했기에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외국의 트레일만 대단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백두대간을 홍보하고 개방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의 피앗재산장(010-2761-7761).

[종주팀 프로필]

권태도(70세)

블랙야크 마운틴 셰르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딱 맞는 사람이다.

지난 9월 네팔 아일랜드피크 (6,189m)를 등정했으며, 2005년에는 에베레스트에 도전해 해발 7,300m까지 진출했다. 백두대간을 3번 완주했으며, 2013년 블랙야크 도전 프로그램이 처음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마운틴 셰르파 역할을 한 ‘원조 셰르파’이다.

김진희(68세)

블랙야크 마운틴 셰르파

‘인간 내비게이션’으로 통하는 독도 전문가이다. 스마트폰 등산앱과 GPS에 정통해, 스마트폰 GPS 기능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백두대간을 완주하고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마운틴 셰르파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GPS를 활용하면 훨씬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다”며 “기계는 처음에 생소해도 쓰다보면 익숙해지게 되어있다”고 노하우를 알려준다.

정가인(41세)

한국등산트레킹 지원센터 숲길정책실장

산이 좋아 직장도 산과 관련된 곳에서 일하는 산사랑 실천가다. 고교 시절부터 스포츠클라이밍과 암벽등반의 재미에 빠져 산에 입문했으며, 대전지역 대학생 연합산악회인 하리산악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올바르게 산을 다니도록 도와드리고 싶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