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강화도 섬앤산

표지 : 강화도 남부 해안선은 여백 많은 고즈넉한 길이다. 나들길 20코스 동막해변에서 미루지항으로 이어진 길 위에서 젊은 두 사람이 점프해 독특한 장면을 연출했다

글 : 신준범 기자 / 사진 : 주민욱 기자

인천 최고봉 마니산과 초피산, 전등사 품은 정족산을 둘러보았다

바다가 흐르고 있었다. 콸콸 강처럼 흐르는 좁은 바다 건너 거대한 섬. 한강과 임진강이 끝나는 곳에 자리한, 북쪽 강과 남쪽 강이 바다를 만나는 곳에 있는 섬. 그곳에 뿌리 깊은 우리 역사가 깃들어 있다.

단군신화가 담긴 마니산,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 고려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의 탄생, 서양 세력과 첫 전투를 벌인 병인양요까지. 40여 년간 궁궐이 있던 수도였던 섬이다. 섬 넓이로는 4번째지만, 역사적 깊이로는 첫 손가락에 꼽히는 섬 강화도다. 인천 썸&산은 강화도를 3회에 걸쳐 남부, 중부, 북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손돌의 한 깃든 좁은 바다

고려시대, 몽골 군대가 파죽지세로 쳐들어왔다. 왕인 고종은 강화도로 피란하면서 바다를 건널 작은 배를 구하지 못해 어부 손돌의 나룻배를 타게 되었다. 물길이 좁아 앞이 보이지 않고 거친 물살에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겁에 질린 왕은 어부 손돌이 적과 내통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여겨, 그의 목을 베라고 명한다.

손돌은 물길이 험해서 그런 것이라 설명했지만, 왕은 믿지 않았다. 체념한 손돌은 죽기 전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 가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 유언을 남겼다. 흘러가는 바가지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한 왕은 자신이 오해했음을 깨닫고 손돌의 시신을 거둬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그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했다.

마니산 산행의 백미인 주능선 바윗길을 오르는 김강은·김희남씨. 안전한 데크 우회로가 있다.

손돌이 죽은 바다를 지나자, 육지 같은 섬 강화도다. 강화도 최고봉이자 인천 최고봉인 마니산(469m) 산행에 나선다. 단군이 제사를 지냈다는 설화가 아니더라도, 강력한 검은 실루엣은 시선을 당기는 힘이 있다. 강화의 다른 산과 대번에 구분되는 압도적 폭발력이 능선의 굴곡에 실려 있다. 바위산 특유의 마력이 있어 산 좀 타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마성의 실루엣에 끌린 오늘의 주인공은 클린하이커스 김강은·김희남씨다. 김강은씨는 ‘클린하이커스’라는 친환경 아웃도어 단체를 만들어 쓰레기 줍기 산행, 주운 쓰레기로 정크 아트 만들어 경각심 주기 등 자연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다. 김희남씨는 100km 트레일러닝을 4회 완주한 바 있는 13년차 러너다.

들머리는 덕포리노인회관. ‘거칠부 다이어리’를 연재 중인 강화 토박이 고영분씨가 추천한 초피산 입구다. 지능선인 초피산을 거쳐 마니산 정상을 오르는 코스다.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 오르고픈 호기심이 든다. 철갑처럼 바위도 적당히 두른 것이 높이 200m대 산이지만 땀 깨나 흘릴 각오로 입산한다.

강화도 최고봉이자, 인천 최고봉인 마니산 정상.

산 입구를 찾다가 닿은 골목 끝은 가정집 마당이었다. 어르신이 문을 열고 나와 “저기로 가면 된다”며 바로 옆을 가리킨다. 여럿이 지나왔으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산길이 투명 망토를 벗어던졌는지 이제야 보인다. 이정표 없이 희미하지만 분명한 산길이다. 허나 오를수록 사라진다. 낙엽이 풍년이라 길을 삼켰다. 어르신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산길이 어디 있어. 치고 올라가면 되제”라는 말, 농담이 아니었다.

고도를 높일수록 직벽에 가까운 초피산은 꽤 위협적이다. 무식하게 직등으로 치고 오를 수 없으니 GPS를 들여다보고 길 흔적을 예민하게 좇는다. 오른쪽 사면으로 우회하자 산길과 만난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은 양 소박하고 귀여운 산길이 반갑다. 뾰족봉인 초피산 정상부를 우회해 뒤쪽 산길로 오른다. 손발을 다 써야 할 정도로 가파르지만 어렵지 않게 작은 정상 팻말에 닿는다. 소나무가 둘러싼 좁은 정상이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경치가 시원하다. 고려해운항공산악회에서 걸어둔 ‘초피산 253m’ 현판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마니산 주능선의 압도적 시원함을 즐긴다. 최단 코스로 정상 인증만 하고 가는 이들은 누릴 수 없는 조망의 즐거움이 주능선 바윗길 곳곳에 있다.

뒤돌아서자 만리장성 같은 마니산 주능선이 하늘의 절반을 가렸다. 하늘을 가린 단순명료한 산줄기. 여기선 헤맬 일 없이 오직 걸으면 된다. 마른 흙 흩날리는 계절, 앙상한 산은 사소하지만 건너 뛸 수 없는 길을 과제로 준다. 정직하게 받아 삼키는 일만 남았다. 꼴딱 꼴딱 숨넘어가는 소리가 몇 번 흘러가자, 장쾌한 풍경이 반가운 주능선이다.

수평선 없는 바다도, 미세먼지 사이로 흘러가는 섬도, 모자이크 작품 같은 논밭도 산을 오른 자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거침없는 시원함이 마음속 체증을 뚫어놓는다. 가만히 멈춰 산이 되고픈 욕망을 억누르며 걷는다. 꽃이 없어도 본질만으로 산은 아름답다.

배신한 여인, 지붕 드는 형벌을 받다

김강은·김희남씨는 눈에 띄는 쓰레기를 보는 족족 배낭에 챙겨 넣는다. 말없이 전해지는 산에 대한 애정이 마니산 햇살처럼 따사롭다. 특별한 날에만 개방하는 참성단 대신 시멘트 헬기장이 정상 역할을 한다. 낮지만 여기선 마니산이 한라산이자, 에베레스트다. 인근 산과 바다를 호령하는 압도적 산세가 경쾌한 풍경으로 와락 안긴다. 감미로운 등산의 맛을 음미한다.

앉아서 간식을 먹는데 슬그머니 옆에 와서 앉는 봄꽃 같은 노란 고양이. 간식을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 부담스럽지 않다. 최단 코스인 계단길로 고도를 내리자 솔잎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차분한 계곡이다. 잠깐 벤치에 앉자 달궈진 근육이 식는 것만 같다. 입장료를 내지 않아서인지 매표소 앞을 지나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마니산에서 계단길로 하산하면 닿는 상방리계곡. 공원처럼 조성된 휴식하기 좋은 계곡이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잤다. 강화에선 바다가 보이는 펜션이 흔했고, 비수기이고 평일이라 가능했다. 창밖으로 갈대가 춤을 추는 갯벌이었다. 풍경을 보고 황홀했던 것이 언제였던가. 낭만 실조에 걸린 직장인 모씨를 데려와 1시간 동안 멍하니 앉혀 놓고 싶었다.

다음날 정족산(222m)으로 갔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을 걷고 싶었다. 높이는 낮지만 고조선 때 쌓았다는 설이 있는 유서 깊은 조망 명소를 지나칠 수 없었다. 차곡차곡 놓인 산성은 정갈하고 시원해 따라 걷는 즐거움이 있었다. 동문에서 곧장 오른쪽 능선을 따라 올랐다. 끝없이 가파른 오르막이 등장했다. 마침내 올라서자 영화 <록키>에 나왔던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길상면 선두4리 선착장을 걷는다. 나들길 8코스는 초지진에서 동막해변까지 이어지는 남부해안선길이다.

이겼음이 아닌 심장을 삼킬 것 같은 긴 오르막 앞에서 포기하지 않았음을 축하하는 환호송 말이다. 하루를 버텨내는 것도 승리임을 탁 트인 경치가 알려 준다. 높이 200m대 산이라 믿어지지 않는 시원함에 미소가 절로 난다. 살다보면 거칠지만 단순명료한 산행의 성취감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가파른 산성은 단도직입적으로 속내를 밝히며 건너편 능선까지 시선을 끌고 간다. 시원시원한 정족산의 성격 탓에 오르막이 즐겁다. 정상엔 ‘삼랑성 정상’ 이정표가 있다. 북문을 거쳐 능선을 돌아 전등사傳燈寺로 내려선다. 절에는 독특한 전설 2개가 전한다.

한적한 시골 포구 곳곳에 조용한 평화가 깃들어 있다. 두런두런 대화하며 부담 없이 걷기 좋은 해안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조선 철종 때 관아에서 은행나무 열매를 두 배로 바치라고 요구하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노스님은 도력이 높은 백련사 추송스님을 초청해 기도를 올렸다. 3일 기도가 끝나자 추송스님은 “이제 전등사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을 것”이라 말했고, 먹구름이 몰려와 폭우가 내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전등사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

두 번째는 대웅보전 지붕을 떠받치는 나부상裸婦像에 관한 것이다. 지금의 대웅보전은 17세기에 지은 것인데, 당시 멀리서 온 도편수(목수)가 공사하던 중 이곳의 주모와 눈이 맞았다. 사랑에 눈이 먼 도편수는 일당을 받는 족족 주모에게 갖다 주었고, “공사가 끝나면 살림을 차리자”고 입을 맞췄다. 그러나 공사가 마무리 되어 갈쯤 주모는 야반도주해 사라졌다. 깊은 실의에 빠진 도편수는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벌거벗은 여인을 조각해 지붕 4개의 귀퉁이를 들도록 만들었다. 4개의 나부상이 재미있는 것은 제각각 다른 모습이며 익살스런 모양이다. 이런 파격을 허락한 주지스님의 자비로움도 재미있다.

강화도의 힘은 마니산 능선에 깃들어 있다. 공룡등골 같은 기운찬 바위산줄기가 우렁차게 이어진다. 바위맛을 제대로 보려면 정수사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길을 추천한다.

바다로 간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강화 나들길을 걷는다. 햇볕이 쏟아지는 강화도 남부의 해안선을 걷는 사람은 없다. 바다마저 멀리 떠나고 갯벌만 허허롭다. 상춘객이 오기 직전의 고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오후의 아지랑이 사이로 바다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강화도 남부 가이드

마니산이 처음이라면 정수사를 들머리로 산행하는 것이 좋다. 마니산의 백미인 바위능선을 처음부터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여간한 코스는 다 가봤다면 초피산 코스를 추천한다. 덕포리노인회관에 차량 몇 대를 세울 공간이 있다. 여기서 190m 직진하면 하천을 건너는 다리 앞에 작은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전봇대 옆에 희미한 산길이 있다.

해안선의 쓰레기를 줍는 김희남·김강은씨. 클린하이커스인 두 사람은 쓰레기 줍기가 몸에 배어 있다.

산길을 따라 오르다 오른쪽 사면으로 우회해 능선에 닿은 후 초피산 정상을 오를 수 있다. 덕포리노인회관에서 초피산 정상까지 1.3km이며 30~40분 걸린다. 마니산 정상을 거쳐 상방리 주차장까지 산행 거리는 7km이며 4~5시간 걸린다. 초피산 외에는 길찾기 어려운 곳은 없다. 마니산 정상은 BAC ‘명산 100’ 인증지점이다.

정족산은 산성 따라 능선을 한 바퀴 도는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하다. 동문으로 입장해 산성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내려와서 전등사를 둘러볼 경우 3km이다. 전등사는 문화재관람료 2,000원을 받는다.

강화 남부의 걷기길은 나들길 7코스, 8코스, 20코스가 있는데 강화도 남쪽 해안선을 따라 걷는 8코스와 20코스가 권할 만하다. 하이라이트 구간만 걷는다면 동검도 입구에서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 동막해변에 이르는 코스와 동막해변에서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 장화리에 이르는 코스를 이틀에 나눠 걷는 게 좋다. 비교적 찻길이 적고, 고즈넉한 갯벌과 바다의 낭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뙤약볕이라 창이 넓은 모자를 쓰면 쾌적하다.

강화도 남부 해안선을 잇는 걷기길에서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돈대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분오리돈대에 올라서면 동막해변과 서해바다가 시원하게 드러난다.

교통

마니산의 대표적인 기점인 상방리주차장과 정수사주차장은 주차료가 무료다. 초피산 입구에는 주차장이 없으나 덕포리노인회관에 3~4대 차를 세울 공간이 있다. 대중교통으로 간다면, 지하철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서 71번 버스를 타고 39정류장 40~50분을 이동해 덕포리에서 하차하면 초피산 입구에 닿는다. 산행 날머리인 상방리 주차장에서 71번 혹은 60-5번 버스를 타면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