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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 bac 피플

글 : 민병준 / 사진 : 김준영 셰르파

명산100 두 번 완등하고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를 펴낸 오혜령 씨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 이 책은 블랙야크가 지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 완등 산행기다. 여기엔 안전전문가로서 100대 명산을 두 번 완주한 오혜령 씨가 보고 느낀 명산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세밀하게 표현돼 있다.

“보통 산행 후엔 SNS에 기록을 남겨요. 그런데 몇 년 전 지인께서 저의 SNS를 보시곤 ‘마치 직접 다녀온 것처럼 생생하다’며 ‘책으로 남겨서 산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하셨어요. 그 분은 교통사고를 당해 목발 없이는 거동할 수 없게 되셨거든요.”

그렇다. 건강한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산. 몸이 불편하다면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오혜령 씨는 그런 분들이 대리만족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출발부터 산행하는 내내 동행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아, 저 바위구나’, ‘아, 저 꽃이구나’ 하는 그 산만의 특징을 보여주려 노력했어요. 마치 직접 다녀온 것처럼 소소한 것들도 기록했지요.”

풍경만이 아니다. 등산인들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산악안전 가이드’가 명산마다 하나씩 보너스로 실려있다. 안전산행 요점을 계절별, 상황별로 첨부한 것이다.

실제로 오혜령 씨는 안전전문가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산업안전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적십자사 응급처치 전문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이런 안전전문가가 100대 명산을 두 번 완주했다. 2016년에 시작해 2019년에 1차로 완주했고, 2021년에 2차 마무리를 했다.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는 그 기록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제목에서 ‘등산은 건강’이라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노인복지 일을 20년 가까이 했어요. 현장에서 항상 느낀 것은 정말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였습니다.”

노인복지 관련 일을 오래 하면서 현장에서 여러 계층의 어르신들을 만났다. 재력가, 권력자도 있었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해 식사도 하기 어려워 관급식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모습도 많이 목격했다.

“삶에서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은 현장경험에서 더욱 확고해졌어요. 여러 취미 중에서 등산은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최고의 여가활동이지요. 다만 내 능력에 맞도록 계획하고 산행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지니 욕심 없이 다니면 안전하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전전문가인 그는 실제로 산행 중 타인의 응급상황에서 도움을 준 적이 많다. 새해 해돋이 감상 후 눈길에 미끄러진 분을 응급처치한 적도 있고, 또 산행 중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진 등산인을 도운 적도 있다. 주변에선 다들 “어떡하지?” “어떡하지?” 당황만 하는 상황. 오 씨는 언제나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래서일까.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산행기만 실으려니 뭔가 허전했다. 산업안전학 ‘박사 동기’이며 ‘산행 동지’인 박옥남 씨에게 자문을 구했다. 100대 명산도 같이 완주한 두 명의 안전전문가가 머리를 맞댄 끝에 ‘산악안전 가이드’ 필요성에 자연스레 의견 통일을 보았다. 책 작업을 같이하게 된 동기다.

“몇 년 전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이 제한이 적은 산으로 몰려들었어요. 이때 산행 경험이 적은 젊은 사람들도 많이 유입됐지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보 산꾼들이 점점 많아지고 산악사고 발생도 빈도가 높아졌어요. 그래서 산에서 사고를 예방하려면 알아야 할 내용을 수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공저자인 박옥남 씨는 오혜령 씨가 산으로 ‘전도’한 후 둘도 없는 산행 동료가 됐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첫 번째로 완등하고 완등패와 패치를 박 교수님께 자랑삼아 얘기했어요. 그러다 박 교수님께서 제가 속한 산악회와 겨울 태백산을 동행했는데, 거기서 설경에 반해 본격적으로 100대 명산을 시작했습니다. 박 교수님도 2년 만에 100대 명산을 완등한 뒤 안전전문가로서 산악안전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책 작업을 같이하게 된 것이죠.”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도 예방이 아주 중요하다. 두 분의 안전전문가는 산행 중 발생하는 산악사고도 예방이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물론 변화무쌍한 자연에서 100퍼센트 예방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렵지만, 사고율을 줄이고 피해를 최소화해 소중한 생명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친 사람이 헬기로 구조되는 장면도 목격했고, 우연치 않게 사고들을 자주 만나면서 산악안전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배낭에 응급처치 파우치를 항상 매달고 다녀요. 등산용 스카프도 여러 장 소장하고 있지요. 산행 중 응급처치에 필요한 경우 삼각건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100명산 완등은 한 번도 쉽지 않다. 그런데 두 번씩이나 완등한 오혜령 씨. 젊은 시절엔 산에 큰 관심이 없었다. 결혼 후에도 가족, 직장, 교회라는 ‘삼각지대’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다 커서 시간 여유가 생겼을 때 운명처럼 다가온 게 산이다. 고향 덕분일까.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산악지대인 경북 봉화가 고향입니다. 봉화읍에서도 40분 정도를 더 들어가야 하는데, 요즘도 버스가 하루 3번밖에 안 다닙니다. 유서 깊은 사찰인 축서사가 있는 백두대간 첩첩산중 마을이죠.”

어릴 적에는 산속에서 뛰노는 삶이 생활이었다. 오빠들이나 동생들과 뒷산을 자주 올랐다. 그때는 이렇게 한국의 100대 명산에 관심을 갖고, 100명산 산행기까지 발간하면서 열성 ‘안전등산 전도사’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00대 명산의 첫 인연은 2014년 겨울. 우연히 지인을 따라간 태백산이었다. 주목에 쌓인 눈꽃과 상고대를 보고 겨울 산에 반한 오 씨는 하산하자마자 한국의 100대 명산 리스트 정리한 뒤 하나씩 지우면서 산행을 해나갔다. ‘블랙야크 명산100’을 알기 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가입한 지역 산악회 대장님이 블랙야크의 100대 명산을 소개해주셨어요. 블랙야크의 ‘명산100 도전’ 앱주소를 받았는데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바로 가입했죠. 저는 끌리는 것은 바로바로 실천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이렇게 버킷리스트가 된 100대 명산. 산행은 주로 토요일에 나섰다. 일요일은 주일 예배 보러 교회에 나가야 하므로 피했다. 짬을 내서 주중에 갈 때도 있었다. ‘영혼의 건강은 교회’에서 얻고, ‘몸의 건강은 산’에서 다지는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00명산 산행이 일상에 들어와 자리 잡게 되자, 산 아래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었다. 이럴 때 가족이 든든한 후원군이 되어 주었다.

“식구들이 처음에는 놀랐죠. 날마다 산 얘기만 하고, 시간 날 때마다 장비를 챙겨나가니까요. (웃음) 하지만 다른 데도 아니고, 산에 빠진 것이라며 이해를 해주었어요. 오히려 배낭이나 아이젠을 선물해주며 안전하게 잘 다녀오라고 적극 응원해 주었답니다. 25년을 가족들 뒷바라지만 했더니 그에 대한 보상이었던 것이죠.”

오혜령 씨에게 산은 건강의 원천이고, 힐링의 근원이다.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건강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가 없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100대 명산을 목표로 하면서 하나씩 인증을 할 때마다 그 성취감과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특히 그 블랙야크 인증용 빨간 스카프는 참 기분 좋게 했어요. 정상에서 사진을 찍을 때면 많은 등산인들이 ‘저건 뭐지?’ 하며 부러운 눈길을 주었는데 그것도 즐겼던 것 같습니다.”

오혜령 씨는 100대 명산을 두 바퀴 돌고도, 지금도 꾸준히 산행을 계속한다. 백두대간도 가고, 섬 산도 오르고, 국립공원, 영남알프스 9봉 완등 등 시간 날 때마다 배낭을 꾸린다. 오 씨는 산에 갈 때면 승용차 운전대를 손수 잡는다. 운전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다. 동료들과 산행에 나설 때도 그가 핸들을 잡는 경우가 많다.

오혜령 씨에게 산은 무엇일까. 그는 산을 한마디로 ‘자연 치유제’라고 정의한다. 사람의 감정 주머니를 풍성하게 해줘서다. 특이한 경관의 무등산 주상절리, 아흔아홉 굽이 인생길처럼 힘들었던 구봉산, 사색의 깊이를 더했던 계룡산…. 100대 명산 중 기억에 남지 않는 산이 없다.

“슬플 때 산을 찾으면 평안을 얻고, 여럿이서 함께 산을 오르면 기쁨을 얻고, 부족한 것은 나누는 넉넉함도 배우고, 어려울 때는 배려와 도움에 대해 알게 하지요.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감정적으로 평안을 얻는 데는 산만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아름답고 예쁜 경치를 보면 일단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100대 명산을 두 번 완등하는 사이, 산속에서 피고지는 꽃들과도 친구가 됐다. 이젠 웬만한 꽃 이름은 줄줄 왼다. 함박꽃을 가장 좋아한다. 순박한 듯 고결한 모습에 반해서다. 가야산을 찾았을 때 그 모습을 본 후 푹 빠졌다. 문학소녀 기질이 남아서일까. 시도 쓴다. 산에 관한 시도 여러 편 지어 동호회 시집에 발표하기도 했다.

작고 미약한 눈꽃을 보며

마음속의 다짐을 되새겨 본다

인내하고 견뎌내는 인고의 삶

-오혜령의 시 ‘북한산을 다녀와서’ 중에서

백두대간 자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오혜령 씨. 인생에서 첫 산은 고향집에서 가까운 소백산이다.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친구들과 다녀왔던 5월 5일 봄날의 소백산. 철쭉은 일렀고, 진달래가 아름다웠다. 희방폭포의 청량감, 응달에 남아 있던 눈도 기억에 남는다. 산행 중 어지러움을 느끼고 주저앉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걱정을 끼쳤던 일도 생생하다.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100대 명산을 두 번 완주하는 사이.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 다름 아닌 사람들과의 인연이었다.

“2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언니가 한 분 계시는데 당연히 함께 100대 명산을 완등했고요. 많은 산행을 둘이 진행했어요. 그로 인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연으로 이어가고 있지요. 이렇게 해서 맺어진 산행 동료가 다섯입니다.”

오혜령 씨는 산행 파트너를 ‘독수리 5인방’이라고 부른다. 모두 그가 속한 노을산악회에 몸담고 운영진으로서 ‘100대 명산 완등’이라는 훈장을 달고 있다. 나이 순으로는 박옥남(62세), 박권신(57세), 정현숙(57세) 조정열(53세), 오혜령(53세) 씨고, ‘100대 명산 완등 순서’로는 조정열, 오혜령, 정현숙, 박옥남, 박권신 씨 순이다.

“우리 5인방의 인연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워요. 항상 서로 배려가 깊고 도움을 주는 것이 몸에 배어있어 한 번도 트러블이 없었답니다. 앞으로도 섬&산, 백두대간 등의 산행을 지속적으로 동행할 것입니다.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함께 늘 건강하게 산행하자고 약속했어요.”

오혜령 씨의 배낭은 늘 풍족하다. 개인장비와 응급처치 파우치 외에도 물과 먹을거리를 항상 여유 있게 갖고 다닌다. 산행 중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다. 언젠가는 어린이를 데리고 가면서 물도 챙기지 않은 등산객에게 본인의 물을 준 적도 있다. 높은 산을 오르면서 에너지를 공급해줄 먹을거리를 전혀 준비하지 않은 이에겐 배낭을 다 털어서 내준 적도 있다.

“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준비 없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시련을 주기도 하지요. 초보자라면 높은 산을 오르기 전에 작은 산에서 여러 번 훈련하고, 전문가와 동행을 한다거나 철저한 준비를 해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기를 당부드립니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두 번 완주하고, 『산에서 만든 튼튼한 허벅지가 연금보다 낫다』를 집필한 작가. 또한 대한적십자사 응급처치 전문강사요, 산업안전학을 전공한 ‘안전전문가’의 애정 어린 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