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박탈', 시설화를 고민하기
일어나서, 먹고, 사람을 만나고, 다시 잠에 들고.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이러한 활동들이 늘 한정된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통제 하에 이루어져야만 한다면 어떨까요?
'시설'은 통제된 일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삶의 반경은 평생 시설을 벗어나지 않고, 식단 변화, 일과의 변주도 없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나날들은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듭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이루어질 필요도 없습니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을 뿐더러, 그 중 대부분은 명백한 위계가 전제되어 있으니까요. 2023년 현재,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3만명에 달하며 그 중 80%가 발달장애인입니다.
'탈시설'은 이러한 시설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장애계의 끊임없는 요구에 대한 답으로서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장애인 분야의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그에 따라 2018년,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누리고 자아실현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돌봄 시스템)"의 형태로 취약계층에 대한 돌봄 체제를 전환하겠다고 선언합니다(김용득, 2016). 그러나 이러한 탈시설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그리고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등은 지역사회가 중증발달장애인의 진입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과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탈시설을 포기하기보다는 다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사회가 중증발달장애인을 "감당"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의 연구는 바로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구는 '시설'과 '지역사회'를 확고하게 나뉜 것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시설과의 결별은 물리적인 시설을 박차고 나오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지원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촘촘한 관계 속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릴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시설은 어떤 몸을 '불구화/무력화(disablement)' 시키는 권력 그 자체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불구의 삶'을 인정하는, '잘 의존하기 위한' 돌봄과 이를 위한 관계맺기가 필요합니다.
이어지기 위한 '이야기하기'
어딘가의 성원이 된다는 것,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돌봄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상호작용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의사소통은 필수불가결합니다. 때문에 '의사소통권리'는 유엔 장애인 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이 강조하는 기본권 중 하나인 것입니다. 의사소통을 보완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 장애인을 배제하지 않는 의사소통 문화는 이 기본권이 보장되기 위한 밑거름입니다. 그러나 현재, 중증장애인의 생존권마저 불안정한 한국 사회에서 의사소통권리에 대한 논의는 요원해 보이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구는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몸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미래를 그리며, 장애인, 그 중에서도 점차로 시설로부터 나오고 있는 중증발달장애인과 함께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 보고자 합니다. 모두가 함께 이야기하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 미래는 어떤 지평에서 가능해질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연구를 통해 크게 세 개의 질문에 답하고자 하였습니다.
첫째,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어떤 상호작용의 조건 위에 구성되는가?
둘째, 그러한 사회적 공간은 어떤 미시적인 실천을 통해 의사소통의 문화를 형성하는가?
셋째, 그러한 사회적 공간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고, 이 확장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특정 장소를 필드로 삼지 않고, ‘성인 발달장애인의 삶과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성’이라는 주제와 연동된 다수의 현장을 방문했고, 그 중 청년 발달장애인의 관계를 확장하기 위해 꾸려진 발달장애청년허브 'ㅅ'을 중심으로 현장의 인물들과 여러 차례의 공식적, 비공식적 면담을 진행하였습니다.
1. 상호작용의 조건
모든 사람에게 그러하듯, 발달장애인에게 있어서도 의사소통은 가깝게는 장애 당사자가 본인의 필요와 욕구를 피력하고 관철하기 위해서, 넓게는 사적인 영역으로 내몰린 이들이 다시금 공적 영역에 정치적 주체로서 출현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발달장애인의 발화는 상당 부분 비장애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증상을 '치료'할 것을 요청받았습니다. 누군가의 의사표현이 병리화되어 교정의 대상으로 여겨질 때,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접힌" 시간(김은정 2022: 60) 속의 개인은 어떻게 타인, 그리고 사회와 관계맺을 수 있을까요? 이 장에서는 의사소통에서 배제된 존재인 발달장애인을 지역사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의사소통이 가능한 '환경'의 구축을 시도한 사례를 통해 발달장애인과의 의사소통 기반을 닦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살폈습니다.
1. 옹호가게
발달장애청년허브 'ㅅ'에서는 발달장애 청년들의 생활 반경을 확장하고자 '옹호가게'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2019년부터 시작된 '옹호가게' 프로젝트는 "발달장애인이 환대받으며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게를 만들어가는 프로젝트"입니다. 이전에는 '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몇몇 가게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해당 프로젝트는 2021년 마포구 민관협치 사업으로 선정되어 발달장애 청년들이 감각하는 마을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옹호가게' 프로젝트가 지역사회 내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를 '옹호가게' 선정 방법과 이를 가능케 했던 'ㅅ'과 성미산 마을이라는 지역 공동체의 특성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1-1. 옹호가게 선정 방법
옹호가게는 마을의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자주 찾는 공간을 중심으로 선정되었고, 본격적 선정 과정에서도 당사자와 동행하여 가게를 방문하고, 점주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선정이 완료된 후에는 '이렇게 지원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책자를 전달해 선정 이후 장애 당사자와의 관계를 다지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옹호가게'에 대한 장애 당사자의 참여가 활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가 당사자와 가게 운영진 간 이미 맺어진 지역사회 내의 관계에 기반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관계의 확장 가능성이 지역 공동체의 특성에 이미 존재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카페 'ㅂ'은 '제1호 옹호가게'로, 카페의 사장인 J는 'ㅅ' 청년 K와의 관계가 단체 'ㅅ'이 시작되기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카페 앞을 서성이는 K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관계는, 지역 사회 내에서 ‘사랑방’의 역할을 자처할 정도로 구성원 간 관계 형성이 집약된 장소인 카페 ‘ㅂ’를 경유하며 K가 ‘ㅂ’를 방문할 때마다 ‘길동무’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확장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옹호가게’ 사업의 태동과 이가 지역사회 내에서 원활히 정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일차적으로 성인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혈연가족 외의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이들과 관계맺을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그러한 관계의 확장을 가능케 하는 지역 공동체 성원 간의 긴밀한 관계가 필수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2. 지역 공동체
지금은 [성미산 마을이] 망원동보다 초라해 보이지만 느리게 가는 것이 사람들 마음은 좀 더 따뜻하게 가져갈 수 있는 지속력이 있지 않나 싶어요. (옹호가게 카페 ‘ㅂ’ 사장 J)
‘성미산 마을’은 서울시 마포구 내 성미산을 중심으로 연결된 70여개의 커뮤니티를 칭합니다. 성미산 마을은 1994년, 국내 최초 협동조합형 어린이집인 ‘신촌공동육아협동조합 우리어린이집’의 창립과 함께 그 토대가 다져졌습니다. 이어 2001년, 서울시에서 발표한 성미산 배수지 개발 계획으로 주민들의 반대 활동이 언론으로 보도되며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들을 ‘성미산 지킴이’, 성미산 지킴이들이 사는 마을을 ‘성미산 마을’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웃의 존재와 연대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고, 마을 내의 커뮤니티 생성과 활성화에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성미산 마을은 당시에 비해 주민의 관계망과 외연이 넓어졌지만, 문제 해결을 공동체 차원에서 모색하고 이웃과의 유대를 중시하는 등 그 가치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미산 마을의 지향점은 지역사회 성원들 간의 연결을 강조하는 '커뮤니티 케어'의 지향점과 일치하며, ‘ㅅ’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미산 마을이 지닌 이러한 특수성을 감각하고 있었습니다. ‘ㅅ’의 길동무인 O와 나눈 인터뷰에서 공동체성을 바라며 성미산 마을을 찾아왔고, 성미산 마을의 공동체성 때문에 이곳에 머무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는 공동주택에 살고 싶어서 집을 알아보고 있었어요. 여차저차 해서 찾다 보니까 이 마을로 왔어요. (…) 저는 이 마을에서 제일 좋은 점이 인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제일 좋거든요. 특히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이를 낳기 전에도 아이들이 인사를 하면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고 아이들이 나를 편안하게, 안전하게 생각하는구나. 애들은 다 알거든요. (...) 안전한 사람들, 안전한 어른,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나오면 좋고. ( ‘ㅅ’ 훌라 모임 ‘ㅇ 훌라’ 일원 O)
아기 어린이집 가기 전에 양육자랑 어린 아이들하고 생협에서 하는 육아방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 지금은 어린이집 커뮤니티가 있죠, 공동육아 어린이집. 조합 형태라서 부모들이 직접 만들어 가는 부모 참여 [형태로 진행돼요]. 부모들이 친하게 지내면서 아이들 같이 키운다, 이런 의미로. (...) 부모들의 관계가 잘 맺어져 있으면 그 신뢰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잘 자라는 건데. 단순히 집을 오가는 것뿐만 아니라 같이 키운다, 같이 돌봐요. (‘ㅅ’ 훌라 모임 ‘ㅇ 훌라’ 일원 O)
이처럼 O가 성미산 마을을 찾아오고, 이곳에 계속해서 머무는 이유로는 “안전한”,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관계망을 다질 수 있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러한 관계망이 실제로 공동육아, 발달장애인 지원 등 실질적인 돌봄의 형태로 도움이 되었기 때문도 있었습니다.
한편, 성미산 마을의 교육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성미산 학교는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실시하는 대안학교로, “사람은 다양하고, 마을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정치적 행위와 관계맺음, 그리고 그를 통한 인간임의 증명의 근간으로 삼는 것은 복수성이라는 삶의 조건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조건이 제시하는 이미 존재하는 타인과의 마주침을 통해 내가 익숙해져 있는 인식과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다시 생각하는, ‘끝나지 않는 과정으로서의 정치’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말을 빌리자면 “낯선 것에의 개방, 선행한 토대의 박탈, 심지어 기성의 인식론적 장에서 즉자적으로 알 수 없는 것에 기꺼이 토대를 양도하는 자발성”(버틀러 2016: 17)을 요구합니다.
“사람은 다양”하다는 성미산 학교의 전제,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공간”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을 지향하는 성미산 학교의 지침에 따라, 해당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적어도 학령기에 있는 장애인과의 마주침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이는 ‘ㅅ’의 구성원들이 학령기에는 자주 마주칠 수 있었던 발달장애인의 존재가 어느날 사라진 것을 의아하게 여길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ㅅ’이 성미산 마을이라는 배경을 딛고 생겼다는 것은, 성미산 마을과 같은 특수한 공동체성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ㅅ’과 같은 발달장애인의 허브를 구성하는 일이 더욱 어려울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미산 마을 또한 오랜 기간과 고민을 거쳐 공동체를 가꾸어 온 만큼, 현실적인 차원에서 ‘ㅅ’의 사례를 절대적인 본보기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ㅅ’이 활동을 통해 보인 발달장애인이 함께하는 지역사회에 대한 구상,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기존의 상호작용 방식과 관계맺음의 규범에 대한 검토, 그리고 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ㅅ’의 구성원들이 찾아가고 있는 구체적인 ‘예의’들, 이를 토대로 구축되는 ‘의사소통의 문화’, 그리고 그러한 문화 속에서 ‘ㅅ’의 성원들이 발견한 새로운 난관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어서 ‘ㅅ’이 일상의 미시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어떠한 문화를 형성해 나갔는지를 중심으로 발달장애인과 비발달장애인, 또는 비장애인이 의사소통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문화의 조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 내에서, 장애인의 의사 표현은 자주 ‘돌발행동’ 정도로 치부되고 맙니다. 그렇기에 단체 ‘ㅅ’이 만들어 나가는 의사소통의 문화는 발달장애인과의 의사소통에 있어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더라도 상호 간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저희는 ‘ㅅ’ 내에서 공유되고 있는 의사소통의 문화를 크게 ‘대화의 조건’, ‘관계 맺기’, ‘실패의 가능성을 인정하기’의 세 축으로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1. 대화의 조건
(1) 당사자에게 말 걸기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존재,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서 발달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들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존재라는 시선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경우, 발달장애인은 고유한 의견을 지니는 대등한 대화 상대로 여겨지지 못하며, 발달장애인과의 대화는 당사자가 아닌 타인을 경유해 이루어집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직접 말을 걸더라도 예의를 지키지 않거나 (발달장애인과 아동을 동치시켜) 유아어(baby-talk)를 활용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그냥 저랑 N이랑 같이 다니면 저한테 먼저 이야기하고 그럴 때가 많고…. (‘ㅅ’ 청년 N의 활동지원사 P)
경찰서에서는 “장애인들은 주로 활동지원사와 동행하기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이 없었다.”라고 이야기 했다. (연구자 필드노트(3월 25일) 발췌)
예전에 I가 질문하신 게 있어요. 사람들 만나면, 예를 들어 K씨랑 I랑 걸어가면, 사람들이 K씨를 보고 얘기하지 않고 I를 보고 얘기하거나. 왜냐하면 K씨는 관심이 없으시니까. 근데 늘 O는 K씨한테 먼저 인사하고 K씨를 다른 사람한테 소개하고 이런 거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거든요. (‘ㅅ’ 훌라 모임 ‘ㅇ 훌라’ 일원 O)
‘사람’의 지위를 보여지는, 응답받는, 그리고 인정받는 상호작용 의례의 과정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라 여기는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의 관점에서, 마주하고 있는 이를 ‘보지 않는’ 행위는 그 자체로 상대에게 ‘체면 지키기(face-work)’의 의례를 수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얼굴에 대한 의례가 소거되며 발달장애인은 ‘존중 받을 만한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발달장애인을 ‘존중받을 만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 무작정 반말을 하는 것 또한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합니다.온당한 예의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상대편은 그러한 취급을 받아도 ‘괜찮은’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O의 인사와 같이 K 등을 대화의 상대, 마땅히 예의를 지켜야 할 상대로 대하는 행동은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토대, 사람으로서의 인정을 환기합니다.
(2) 듣고자 하고 알려고 하는 태도
상대방의 얼굴을 보았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 들을’ 수 있을까요? 연구 초반에, 연구자들은 발달장애인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는 특정한 지식이 요구될 것이라 가정했습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과의 마주침이 늘어나면서 발달장애인과 ‘소통하는 방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듣기 위해서는 듣고자 하는 태도가 기본이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ㅅ’ 안에서 이른바 ‘의사소통의 달인’으로 불리는 활동가 H는 자신들이 의사소통하는 방식에는 달리 특별한 것이 없고 ‘ㅅ’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귀가 열려”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단은 다시 되물어보기. 왜 그렇게 말했는지,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파악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귀가 트였음”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사람으로서 인정’하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들과 소통하려는 ‘욕망’을 지니는 것이 소통에 있어서 주요한 요소임을 드러냅니다.
2. 관계 맺기-합의 만들기
(1) 패턴/레퍼토리를 이해하기
내가 누군지 아니까 ‘저 친구는 저럴 때 저래’, 이렇게 학습이 되잖아요. 다른 분들이 봤을 때 ‘왜 저래’, 무서워하기도 해. 설명을 해 드려요. ‘K는 누구인데’, 나를 아니까, 나를 통해 얘를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같이 만들기도 하고, 같이 이야기하기도 하고. (옹호가게 카페 ‘ㅂ’ 사장 J)
자신이 ‘K를 아는 사람’이라고 서술한 옹호가게 사장 J는 K를 잘 알지 못하는 손님들이 카페에서 위화감을 느낄 때 그들에게 K의 행동 패턴, 또는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성에 대한 Ochs and Solomon(2010)의 논의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포함하여 사회적인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개인의 병리화된 손상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닌, 특정한 아비투스(체현된 사회·문화적 자산)를 전제하는 집단의 비정렬 상태, 즉 각자가 지닌 언어적 ‘레퍼토리’가 엇나가는 상태로 이해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는 언어의 차원을 넘어, “말과 행위”의 영역까지 확대될 수 있습니다. K의 말과 행위를 낯설게 여기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K와 이들의 사회·문화적 조건이 ‘비정렬’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아비투스가 K의 행동양식을 비껴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편, J는 K와의 지속적인 관계맺음을 통해 K가 편안함을 느끼는 행동의 ‘알고리즘’이 무엇인지를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Ochs et al.(2004)에 따르면, 대개의 경우 ‘적절한 의사소통’의 구조(격률)가 분명 존재하지만, 이는 의사소통 상황과 맥락에 따라 암묵지의 형태로 매번 달리 실천됩니다. 반면, 실천적 암묵지의 행위자로서의 ASD 당사자는 그러한 유동적인 실천에 어려움을 겪습니다(Ochs and Solomon 2005: 162). 한편, Ochs and Solomon(2010)은 맥락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실천 속에서도 ASD 당사자가 편안함을 느끼고 정렬된 의사소통을 수행할 수 있는 특정한 ‘알고리즘’, 내지는 레퍼토리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합니다(73-74). 이러한 Ochs and Solomon의 자폐적 사회성 개념은 ‘무엇이 정렬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가’, 그럼으로써 ‘누가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가’의 측면에서 확장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다소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위의 사례의 경우 K는 본인이 편안함을 느끼는 ‘행위’의 ‘레퍼토리’를, 숱한 경험을 통해 만들어 내었으며, J는 이를 관찰을 통해 공유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K를 모르는 손님들의 경우, K와는 다른(혹은 K를 배제하는 형태의) 아비투스를 지녔기에 그의 행동에서 당혹감을 느낀 것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J는 K의 레퍼토리를 손님들에게 공유함으로써 정렬 상태(domain state), 즉 K의 사회적 참여가 가능해지는 상태를 형성했습니다.
(2) 합의 만들기
연구팀의 일원이 직접 현장 연구의 과정에서 경험한 관계를 합의 만들기의 사례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해당 연구자는 ‘ㅅ’ 주관 댄스파티인 버블버블텍에서 길게 이야기를 나눈 발달장애인 청년 L과 그날 찍은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연락처를 교환했고, 다음날 아침, L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습니다.
부재중 전화를 보고 연구자가 느꼈던 감정은 ‘당혹감’이었습니다. 이는 연구자가 기존의 사회적 관계들을 토대로 친밀함의 정도에 따른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를 학습해 왔는데, 그러한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 상황에 직면한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당혹감을 내려놓고 L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눈 뒤에도 이러한 ‘어긋남’의 순간은 존재했습니다. 상대방이 연락을 받지 않을 때 “되도록이면 통화를 여러 번 시도하지 않는다”라는 합의가 L과의 관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연구자는 자신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의사소통 방식을 낯설게 바라보는 작업을 통해 L이 부재중 전화를 남기는 것이 항상 급박하게 전할 말이 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 수 있으며, L과도 편안하고 친밀한 의사소통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연구자는 L과 지금까지 맺어온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약속을 정해 나갔습니다.
“L님, 저 지금까지 학교였어요. 바쁠 때는 바로 전화 못 받을 수도 있는데, 그럼 나중에 다시 걸어도 되죠?” “그럼요 편할 때 통화해요.” L과 통화하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했다. 5월 31일은 미친듯이 바쁜 날이었다. L의 전화를 한 통도 못 받았다. 하지만 L이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에 괴롭지 않았다. ‘우린 편할 때 통화하면 되는 사이니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연구자 필드노트 발췌)
이러한 합의 만들기는 친밀함의 표현에 관한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연구자와 L이 ‘편할 때 통화하기’라는 첫 번째 약속을 맺은 후 두 번째로 약속한 것은 ‘이름 기억해주기/불러주기’였습니다.
나랑 자주 통화를 했는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신다는 것이 조금 놀랐다. 전화를 걸면서도 저장된 내 이름을 볼 텐데. 하지만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서로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줘야 한다는 것 또한 내가 형성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학습한 관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이름을 기억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과 나눴던 대화, 느낌, 목소리로 기억해주고 마음을 나눌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도 다음 통화 때는 이름을 기억해달라고 부탁드려봐야겠다. (…) 그래서 이번에는 “L님~ 저랑 자주 통화하니까 제 이름은 기억해 주세요 저 ○○이에요 ○○”하고 말씀드렸다. L님은 알겠다고 하셨다. (연구자 필드노트 발췌)
연구자와 L은 기존의 의사소통을 토대로 약속을 만들어 나가면서 서로의 일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나간 대화를 복기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하는 ‘다음’에 대한 이야기 또한 나누며, 의사소통이 과거와 현재의 시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기획하고 함께 상상해 나갔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의사소통이 단순한 의미의 전달과 수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합의를 바탕으로 관계를 지속하는 과정임을 배워나갔습니다.
(3) 합의 만들기의 어려움과 '의사결정지원 '
그러나 ‘합의 만들기’의 과정이 언제나 매끄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발달장애인의 주변인은 당사자의 의사를 어느 정도로 존중하면서 관계에서의 합의를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지곤 합니다.
의사결정에 대해, 김미옥·박지혜·정민아(2020)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원의사결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170-171). 이때, 지원의사결정의 기본 원칙은 당사자에게 ‘중대한 위협’을 초래하는 부당한 영향의 경우를 제하고는, 당사자의 의지와 선호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입니다.
서울시의사소통권리증진센터의 센터장 B 역시 당사자의 의지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욕구를 관찰하고 수용하면서도, 그의 신체에 위해를 입힐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타협을 찾아가는 식으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식단 등 즉각적으로 신체에 치명적인 위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반복되었을 때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선택들과 관련한 의사결정의 경우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됩니다.
‘ㅅ’ 청년 N의 활동지원사인 P는 이용인인 N의 건강을 위해 사탕 먹는’ 행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건강을 위한다는 이유로 당사자가 진정 하고 싶어하는 일을 가로막는 것이 과연 ‘활동지원사’로서의 역할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음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자주 N을 ‘감시’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에 대해, N이 자신을 “감시망”으로 여기고 있으리라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두고 김도현(2019)은 “연립(inter-dependence)”의 개념을 적용하여, 여러 주체들 간에 이루어지는 ‘판단’과 ‘소통’을 핵심요소로 자기결정권을 이해할 수 있으며, 비발달장애인 중심의 언어적 표현으로 판단과 소통을 획일화해 생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345-346).
활동지원사 P가 N과 ‘사탕 먹는’ 행위에 대한 합의를 찾기 위해 주간 사탕 일정표를 만들어 ‘ㅅ’의 벽에 붙여두고 해당 패턴에 따라 사탕을 먹도록 N을 지원하고, 때로는 그의 욕구를 수용해 일정표에 변주를 주기도 하는 P의 실천은 이러한 연립적 관계에서 이용자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의사소통의 실패 가능성을 인정하기
연구보고서에 인용할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ㅅ’을 찾았을 때, 활동가들은 앞서 나눈 이야기들을 긍정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발달장애인은 비언어를 사용하거나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알아듣기가 어렵고, 다른 지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첨언했습니다. 말하기와 듣기 사이에는 항상 미끄러짐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ㅅ’ 훌라 모임의 일원인 O는 처음 ‘ㅅ’ 공동체에 발을 들일 때에는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되나” 고민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말을 잘못하거나 못 알아들어도 그것을 불편하다 느끼거나 상대에게 죄송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지속되는 상호작용과 관계맺기 속에서 이미 서로가 서로의 말을 ‘듣고 있다’는 ‘신뢰’가 형성되어, 말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합의를 암묵적으로 이룬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울 수 있고, 의사소통이 쉽게 미끄러질 수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이들이 체화하고 있는 것은 의사소통이 실패하더라도 당사자와 대화를 단절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ㅅ'의 구성원들은 단순히 발달장애인과의 의사소통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단정하고 소통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타협하며 답을 찾아가는 일종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사람은 자아의 일면만을 보여줄 뿐이며, 총체로서의 누군가는 늘 일정 수준 가려져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누군가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는 확신은 예측을 이탈하는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타인을 인정하지 않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전에 의사소통의 실패 내지는 미끄러짐이라고 지칭했던 것은 달리 말하면 타인을 구성하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요소를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상대가 나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은 상대와 나의 관계가 지금-여기의 대화에 가두어진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유동하고 변화하며 발전의 가능성을 지닌 것임을, 그리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임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의사소통의 실패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상대를 받아들이는 행위이기도 한 것입니다.
1. 발달장애인의 삶과 돌봄
시설 바깥에서 살아가는 발달장애인의 삶의 범위는 매우 협소합니다. 이러한 관계망에서 돌봄의 의무는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에게 떨어지게 되는데, 개인의 힘으로 돌봄을 버텨내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우 어려울뿐더러, 지속 불가능합니다. 나아가 돌봄의 주체가 가족뿐인 사회에서, 가족을 잃은 발달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시설뿐입니다. ‘ㅅ’에서 ‘가게’를 계속해 방문하고, 발달장애청년들이 더 많은 마을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도록 관계망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탈시설을 중요 의제로 외치면서 그 이후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는 활동지원사 P는 탈시설 의제에 공감하면서도, 탈시설을 한 발달장애인을 누가 ‘돌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계속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P는 ‘ㅅ’의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그가 마을 안에서 발달 장애인 자식을 돌보는 일의 책임은 ‘ㅅ’의 길동무이자 지역 사회의 일원이기도 한 이들과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임을 ‘ㅅ’를 오가며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커뮤니티 케어에 대한 조언을 구해 오는 공무원들에게 ‘ㅅ’ 활동가 G는 ‘지역사회’에 직접 다가갈 것을 권유했다. 그에게는 “나가고, 산책하고, 지역을 그냥 돌아다니는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가 발달장애인의 존재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 커뮤니티 케어를 실천하기 위한, 그리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열쇠였습니다.
2. 노동으로 사회 바꾸기
출범 이후 매년 마을 포럼을 개최해오고 있는 ‘ㅅ’의 작년(2022년) 포럼 주제는 ‘노동’ 이었습니다.
‘ㅅ’은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노동할 수 없는(disabled) 사람’으로 여겨지는 장애인을 다르게 상상할 것을 주장합니다. ‘ㅅ’의 청년들은 지역사회에서 자신들을 드러내고 살아감으로써 “마을을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업장에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형태의 노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공적인 ‘가치’를 생산습니다. 노동에서 배제되었고 그래서 사회에서 밀려났던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살아가는 모습’은 시민 사회를 성숙하게 하며, ‘ㅅ’의 관점에서 이는 분명히 노동입니다.
이러한 노동의 정의를 염두에 두고 창안된 제도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입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노동으로 인정받는 활동을 할 수 없는 몸을 가진 사람의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해당 제도는, 공공 영역의 개입 속에서 노동을 상상할 것을 요구한 장애계의 ‘공공시민노동’ 정책에 기반해 있습니다. 2020년 7월 서울시에서 시작되어 이어져 오고 있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정책은, 실적이 아닌 권리 중심의 노동 개념을 주장함으로써 노동권 담론의 대안으로 부상한 바 있습니다.
연구진이 참여관찰을 수행했던 ‘ㅅ’의 훌라모임과 같은 문화예술활동, 옹호가게를 선정하는 권리옹호 활동, 마을이나 지역 단위의 네트워크를 통한 활동 등 또한 이러한 공공일자리 정책의 기획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이에 더해, ‘ㅅ’의 성원들은 ‘출현’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는 노동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제도에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아직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보장하는 ‘노동’에 장애여성이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돌봄·가사 노동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는 해당 제도가 이야기하는 노동이 여전히 비장애인 남성을 상정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둘째로, 노동으로서의 인정, 그리고 활동비 지급이 지자체를 경유한다는 구조상, 이들의 노동은 매 순간 관료제의 시선 하에서 낱낱이 평가됩니다. 레비 R. 브라이언트에 따르면, 관료-기계는 “우리의 사람됨, 우리의 처지, 우리의 삶[을] 양식에 의해 사전에 규정된 범주에 따라 분쇄”하고 거르는 장치입니다(브라이언트 2020: 93; 조문영 2022: 45에서 재인용).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제도는 복지제도가 아니지만, 여전히 그 심사의 주체가 지자체라는 점에서 복지제도의 맹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2023년 현재, 서울시가 집행하고 있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대한 더욱 엄격한 심사가 이를 방증하며, ‘ㅅ’ 단체의 공공일자리 계획이 반려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출현의 정치학과 사회성에 관한 이론들을 바탕으로, 성인 발달장애인의 삶과 사회적 관계, 이를 관통하는 요소인 의사소통의 공간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ㅅ’에서 연구자들은 이제껏 마주쳤던 발달장애인의 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발달장애인들과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들이 중심이 되는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사소통은 자주 매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대화를 거부하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상대방의 반응에 당황했고, 몇 차례 되물어도 상대방의 발화를 알아들을 수 없어 조력인의 도움을 구했고, 맥락을 쉬이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순간들은, 그 자체로 지금까지 우리의 의사소통이 발달장애인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형성되어 왔으며 우리의 삶이 발달장애인을 인간의 ‘외부’에 위치시켜 왔음을 의미합니다.
2023년의 한국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이 말을 걸 수 있는 공간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최근 서울시가 중증장애인들의 ‘권익옹호’ 직무를 ‘생활편의 및 권익개선’이라는 표현으로 약화하고, 권익옹호를 위해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불법 집회 및 시위’로 규정하여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 그 예입니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시의원과 특정 정당의 국회의원들 역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와 관련된 기관들에 지나치게 오래 된 사업 자료를 요구하는 등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중증장애인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말”을 빼앗기기 직전의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일자리의 위기는 일차적으로는 생계 유지의 위기를 의미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공적’이라 여겨지는 공간에 출현하고 ‘말’할 수 있는 창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합니다.
거주시설 바깥에서도 누군가의 삶을 무능화하는 권력이 촘촘히 포진되어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떠한 저항을 구상할 수 있을까요? 아렌트는 사회로부터 배제된 이의 출현, 관계 맺음, 그리고 연대 그 자체를 정치라고 이해합니다. ‘ㅅ’의 사례는 공동체를 구축하는 돌봄의 과정, 돌봄의 관계, 더 ‘나은’ 돌봄을 위한 끈질긴 고민들이 어떻게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광의의 정치를 구축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정치는 상호작용의 가능성에 그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구는 사회가 누구의 출현을 가로막고 있는지, 어떤 사회적 상호작용을 불가능하게 배치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정치’가 필요함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연구자 소개
이 웹페이지는 2023-1학기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의 문화기술지(ANT2101) 수업에서 진행한 연구의 일환으로 고아현, 김서정, 송나현, 이지원, 황시연이 제작하였습니다. 연구와 관련하여 문의 사항이 있으시다면 (iowacuty99@gmail.com)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Cred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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