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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9구간, 조령산

표지 : 신선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신선암봉의 경치를 즐기며 바윗길을 걷는다. 우측 뒤에 불쑥 솟은 봉이 신선암봉이다.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주민욱 기자

신선이 산다는 백두대간 최난코스 돌파기!

겨울에 가면 안 되는 산이 있다. 거대한 바위 근육에 눈과 얼음이 보태지면 난공불락의 철옹성이 된다. 발 아래로 까마득한 절벽이 펼쳐지고, 얼어붙은 바윗길을 고정로프만 붙잡고 아등바등 오르내리면, 이게 산행인지 목숨의 고비를 넘고 있는 건지 헷갈리게 된다. 백두대간 최난구간으로 손꼽히는 조령산 종주에 나섰다.

배나무가 많았다 하여 이름이 유래하는 이화령梨花嶺. 봄바람 불면 살랑살랑 떨어지는 배 꽃잎이 안타까워 마을 소녀는 한숨도 자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동장군의 쩌렁쩌렁한 고함 같은 삭풍이 날을 세우고 있다.

두 개의 터널이 생기며 옛길이 되어버린 이화령엔 아무도 없었다. 편리한 터널을 두고 구불구불 산길을 찾는 이가 없는 건 당연했다. 당연한 고요와 당연한 칼바람이 와락 안겨왔다. 이화령이 건네는 격한 인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도시의 익숙한 편안함을 떨쳐내기 위해선, 감각이 미련을 버리고 원초적인 것들에 몸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단순명료한 회귀의 시간이 필요했다.

익숙하게 등산화 끈을 조이고, 등산스틱 손잡이 끈을 말아 쥐는 베테랑 산꾼들과 능선에 몸을 싣는다. 블랙야크 김승환, 변재수, 김윤희, 성예진 셰르파와 함께여서 든든하다. 산림청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도상거리는 짧은 편이지만 험준한 암반이 많아 실거리가 매우 길고 안전사고 위험도 매우 높은 지역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두근두근 박동소리에 맞춰 도전의 쾌감이 울려온다. 단순한 산행이 아닌 백두대간을 딛는다는, 이 구간을 완주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산꾼들의 열정에 기름을 붓는다.

멈춘 풍경 속에 든다. 멍하니 앉아 있던 바위더미며, 하늘만 쳐다보던 굴참나무가 “왜 이제 왔냐”며 반갑게 맞아 준다. 고요함 속에도 결이 있어 귀 기울이면, 나뭇가지에 깃든 명랑한 바람과 걸음에 부서지는 낙엽이 지나온 시간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오르막길에 맞춰 호흡이 가빠오고, 몸에서 열이 난다. 중무장했던 보온장비를 하나씩 배낭에 집어넣는 사이, 묵은 스트레스도 참나무숲 어딘가로 하나둘 떨궈져 나간다.

정상 직전에 만나는 오아시스는 조령샘이다. 얼지 않은 채 “졸졸” 귀여운 목소리로 ‘한 모금 들이키고 가라’며 속삭인다. 백두대간의 기운이 담긴 시원한 물맛에 “캬”하는 소리가 속에서 울려 나온다. 거칠었던 호흡이 차분해지며, 몸과 맘이 깔끔히 정리된다.

조령산 정상 직전의 조령샘을 지난다.버드나무가 우아한 자태로 뻗었다.

조령산 정상을 내려서는 계단길. 예전에 비해 지자체에서 세운 계단이 늘었다.

막강한 고도감! 쏠쏠한 바위맛!

해발 1,026m 정상에 올라서자, 경치가 확 터지며 맞은편의 주흘산이 기다렸다는 듯 힘 좋은 능선을 자랑한다.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는 영남대로의 중요한 길목이었던, 문경새재 조령의 이름을 딴 조령산鳥領山 표지석에는 ‘새도 쉬어가는 조령산’이란 글귀가 적혀 있다.

이번 구간 최고봉에 쉽게 올랐으나, 진짜 산행은 지금부터다. 조령산의 험준함은 신선암봉 자락에 들어서야 본색을 드러낸다.

1,000m대로 끌어올린 고도를 뱉어내고 내리막의 중력에 몸을 던진다. 끝없는 오르내림을 무던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대간 종주자의 숙명을 늘어선 산줄기들이 보상해 준다. 문득 나타난 낭떠러지에서 신선과 마주친다. 절묘한 바위산줄기와 선비 같은 소나무가 신선계의 풍경을 그려낸다. 한국산의 매력을 압축한 절묘한 산경에 두 눈을 타고 황홀한 쾌감이 번져 나온다. 신선암봉이란 이름의 유래를 산이 스스로 알려 준다.

설경이었다면 더 아름다웠겠지만, 덕분에 난공불락의 바윗길을 수월하게 오르내린다. 최근에 설치한 계단 덕분에 서슬 퍼런 고도감의 바윗길 몇 곳을 공짜로 통과하듯 쉽게 지난다. 잊을 만하면 바위가 나타나 고정로프를 붙잡고 끙끙거리며 오르라 명령한다. 충분히 예상한 바윗길이라 유격훈련 받는 군인처럼 차곡차곡 돌파한다.

호랑이 무늬를 닮은 독특한 바위벼랑 위에 서면 사방으로 경치가 시원하게 터진다. 신선암봉 정상 직전에 마주치는 뷰포인트다.

고래등에 올라탄 것 같은 매끈한 슬랩이 나타나 시선을 지평선 끝까지 데려간다. 로프 붙잡고 용을 쓰며 오르던 필사적인 몸과 맘이, 순간 신선의 눈빛에 동화된 듯 평화로워진다. 지나온 조령산은 벌써 저 뒤에 가있고, 가야 할 산줄기가 한층 줄어들어 있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신나게 각자 휴대폰과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담는다.

아담한 표지석이 있는 신선암봉 정상에서 화끈한 경치를 배경으로 도시락을 먹는다. 해발 937m에서의 신선이 부럽지 않은 점심이다. 악명 높은 가파른 내리막에 계단이 있어 수월하게 내려선다.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조령3관문까지는 아직 3㎞ 남짓 남았다.

인심 좋은 신선암봉은 아직 멀었다며, 흰 수염 날리는 도사가 “하하하”하고 과장되게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은 기묘한 바위와 소나무를 계속 내어준다. 용 써서 오르고, 사진 찍고, 용쓰고 사진 찍고를 반복하느라 거리에 비해 시간이 지체된다. 등산객이 많은 단풍철에는 지체되어 줄을 선다는 10m 크랙을 오른다. 막강한 고도감에 서늘하면서도 발끝으로 전해오는 바위맛이 쏠쏠하다. 얼음판이었다면 무시무시한 코스였겠지만, 메마른 겨울 날씨 덕에 희희낙락하며 간다.

명상하는 수도승 같은 전나무숲이 바위에 달궈진 산꾼들의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왠지 조용히 해야 할 것만 같은, 해 지기 직전의 고즈넉한 성문. 조령3관문이다. 영남대로의 중요한 고개였으나, 지금은 찻길이 없는 탓에 대간 종주자나 발품 팔기 좋아하는 부지런한 관광객들만 찾을 뿐이다. 10시간 동안의 산행을 마치고 예약해 둔 조령산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선다.

신선암봉에는 선비처럼 고고한 소나무와 바위가 조화를 이룬 곳이 많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신선암봉의 기념사진 명소.

거대한 장독대 암봉의 출현!

아침 햇살이 비추는 조령3관문이 소란스럽다. 부근 인가의 개 짖는 소리가 청아한 아침에 돌팔매질을 한다. 도망치듯 마패봉으로 향한다. 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걸어놓고 쉬었다는 마패봉 정상은 아담하지만 큼직한 표지석이 있어, 정상 인증사진을 찍기 제격이다. 지나온 조령산 줄기를 간략한 선으로 압축해 놓았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답게 능선 곳곳에 산성 흔적이 있다. 전쟁에서 풀려난 산성은 수백 년이 넘게 깊은 잠을 자는 잠룡 같다. 곧게 뻗은 낙옆송이 산성과 묘한 조화를 이룬 동암문을 지나 부봉 삼거리에 올라선다. 잘생긴 암봉 6개가 뻗은 부봉은 대간 주능선에서 살짝 비켜 있다. 뼈까지 시린 바람이 재촉하는 통에 부봉을 구경할 생각도 못 하고 다음 목적지인 탄항산으로 향한다.

문득 경치가 터지며 가야 할 대간 줄기가 손을 흔든다. 대번에 시선을 사로잡은 건 포암산이다. 낮은 암릉줄기인 탄항산 너머 거대한 장독대 같은 바위 덩치가 후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거칠게 솟은 바위를 에두르는 철난간 길이 마치 중국 황산 절벽길을 미니어처로 줄여놓은 것 같다. 거인이 놓은 블록마냥 바위가 포개져 있고, 그 틈에 소나무가 뱀처럼 뿌리를 내렸다. 흙이 전혀 없을 것 같은데, 생명의 힘이 놀랍다.

탄항산은 월항삼봉이라고도 불리는데 동쪽 기슭에 달목月項이란 동네가 있어, 연관되어 유래하는 것 같다. 낮은 오르내림을 반복하자 마지막 봉우리에 탄항산 표지석이 있는 아담한 정상이다. 앙상한 나무 사이로 칼바람이 몰아쳐 인증사진만 찍고 후다닥 하늘재로 향한다.

하늘에 맞닿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500m에 불과한 하늘재는, 기록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옛 이름은 계립령鷄立嶺이며 <삼국사기>에는 154년에 길이 열렸다고 기록돼 있다. 죽령보다 2년 앞선다. 칼바람 몰아치는 능선에서 풀려나 숙소로 향한다.

신선암봉에서는 수려한 경치와 암릉산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주의해야 한다.

고향집 구들장처럼 아늑한 대간

미세먼지가 사라진 가장 화창한 날, 포암산을 오른다. 거대한 통바위산답게 베布바우산이란 옛 이름이 있다. 정상에서 산허리까지의 암릉이 흡사 베로 덮어 놓은 듯한 모습이라 하여 유래한다.

바위산 특유의 전망대가 곳곳에 있어 비탈길이 심심하지 않다. 지나온 산줄기와 문경의 진산 주흘산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고, 마침내 정상에 올라서자, 멀리 월악산 영봉이 화려한 산세로 불끈 솟은 것이 보인다. 이제야 월악산국립공원에 온 것이 실감난다.

이렇게 백두대간 한 구간을 또 넘었다. 뒤돌아보니, 숨이 헉하고 막히게 조르던 수많은 오르막도 좋은 추억으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백두대간 앞에서 ‘이토록 나약한 몸과 정신이라니’하며 속으로 외치며 무릎 꿇었던 거대한 산줄기가 고향집 구들장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하늘재에서 포암산 정상으로 이어진 계단길. 지나온 대간줄기와 주흘산이 등 뒤로 광활하게 펼쳐진다.

조령산 구간 종주 가이드

조령산이 백두대간 최난구간 중 하나로 꼽히는 건 고정로프가 많아서다. 집중만 하면 어렵지 않은 바윗길이지만, 워낙 많아 거리에 비해 시간이 제법 걸린다. 최근 지자체에서 계단을 많이 놓아 예전에 비해 산행이 수월해졌다.

이화령에서 조령3관문까지 10㎞ 거리이며, 산행시간은 7~10시간까지 산행실력과 날씨, 결빙 여부에 따라 편차가 크다. 연풍이나 문경 방면 중간 탈출로도 상당히 가파르거나, 바윗길이 험하므로 초보자는 조령산만 산행하고 문경새재 마당바위 방면이나 연풍 절골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령3관문은 차량 운행이 통제된 곳이므로 조령산자연휴양림 주차장까지 2㎞ 정도 걸어가야 한다. 조령3관문에서 문경새재공원 주차장은 8㎞를 걸어야 한다.

조령3관문에서 하늘재까지는 11㎞이며 6시간 정도 걸린다. 하늘재에서 수안보 미륵리 방면 주차장까지는 2.5㎞ 임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포암산은 마골치부터 작은차갓재까지 비법정길로 묶여 있어, 하늘재에서 마골치까지 4㎞만 공식적인 산행이 가능하다.

교통

구간을 어떻게 끊든, 차량 한 대를 이용해 종주한다면 괴산 연풍 방면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편하다. 조령산휴양림에서 택시를 타고 이화령으로 갈 경우 요금이 2만3,000원 정도 나온다. 하늘재에서 임도에 가까운 완만한 산길을 따라 2.5㎞ 걸으면 미륵리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 택시를 타고 조령산휴양림까지 3만5,000원 정도 요금이 나온다. 연풍택시(043-833-1494, 010-3663-0456). 하늘재에서는 문경 방면으로 800m 내려가면 포암마을에서 문경읍내로 버스가 운행(1일 9회)한다. 미륵리에서도 수안보로 나가는 버스가 운행(1일 9회)한다.

숙식(지역번호 043)

조령산자연휴양림(833-7994)이 대간 주능선인 조령3관문에서 가깝다. 인근 펜션들에 비해 저렴하고 시설이 깨끗하다. 괴산군에서 운영하며 홈페이지에서 예약 가능하다. 이화령터널휴게소(신도로)와 이화령휴게소(구도로)에서 식사 가능하며, 연풍면사무소 소재지에 연풍해장국(833-7768), 돼지고기 전문 연풍양돈조합직판장(833-9922), 은성식당(833-5771) 등이 있다. 하늘재에 있는 하늘재산장은 파전과 막걸리, 차 등을 판매하며, 매일 문을 열지는 않는다. 수안보에도 식당과 숙소가 여럿 있으며, 기사식당인 시골밥상 약수터집(851-7260)이 가성비 높은 맛집으로 꼽힌다. 1인 8,000원이며 청국장과 달걀찜, 생선구이와 6가지 반찬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