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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승리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도전자! 황희진 BAC PEOPLE

“평생 휠체어에서 못 일어날 줄 알았는데, 놀랍다. 황희진씨는 뇌출혈 중에서도 최악에 속하는 증상이었다. 이 경우, 쓰러진 후 30%는 5분 안에 즉사, 30%는 병원 이송 중 사망, 30%는 평생 못 걷는 불구가 된다. 황희진 환자는 단 10%에 속하는 걸을 수 있는 사례다. 다만 일상에 후유장애가 남는다. 환자 본인이 짊어져야할 몫이다.”

대학병원 의사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다.

황희진씨는 2018년 집에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평소 지병이나, 뇌출혈 전조 증상이 전혀 없었기에, 예상치 못한 날벼락이었다. 당시 경남 창원에 거주하였으나, 창원 내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출혈 부위는 점점 커져 무척 위험한 상태였다. 부산대학병원으로 4시간 만에 이동하여 수술을 받았고, 2개월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가는 명줄을 붙잡고 중환자실에서 3개월 만에 회복하여 일반 병실로 내려올 수 있었다. 8개월 후 퇴원하게 되었으나, 휠체어를 탄 채였다.

담당 의사는 “평생 휠체어를 탈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 말이 너무 무서웠던 그녀는 독하게 재활에 몰두했고, 2년 후 자연스럽게 걷기에 이르렀다. 여기까지만 해도, 같은 증상의 환자 중 상위 10%에 속했으나, 지금은 산행을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상위 1%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성공적인 재활을 이뤄냈다.

Q 수술 후 4년이 흘렀는데, 지금은 완치 되었나요?

아뇨. 뇌졸중은 완치가 없어요. 표시가 덜 날 뿐이예요. 뇌졸중은 어느 병원, 어느 의사에게 수술 받는지가 중요한데, 저는 운이 좋았어요. 제 담당의사가 부산과 경남에선 권위자로 꼽히는 분인데 마침 그 분이 일하는 시간이라 수술이 가능했어요.

수술이 잘되었어도, 쓰러지기 전으로 완벽히 돌아가기는 어려워요. 후유장애가 있는 거죠. 왼쪽 귀 청력을 잃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 때문에 항상 아파요. 진통제를 밥 먹듯 달고 살았는데, 진통제를 장기 복용하면 부작용이 심각하거든요. 저는 마약성 진통제라 부작용이 더 심해요. 지금은 진통제를 끊은 상태예요. 완치는 아니지만, 많이 좋아졌어요.

Q 진통제를 어떻게 끊었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통증이 얼마나 심하냐면, 살이 불에 타는 느낌이에요. 누가 칼로 피부를 긋는 것 같은 느낌이 24시간 지속되는 거예요. 깨어 있을 때도, 잘 때도 항상 아픈 거예요. 산행을 하면서 이겨 냈어요. 가파른 오르막을 걸으면 숨이 차고 힘드니, 그런 통증을 잊게 되더라고요.

Q 아프기 전에도 등산을 했었나요?

전혀요. 원래 취미는 골프였어요. 산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났더니, 많은 것이 변했어요. 다시 골프를 쳐봤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승부가 있다보니 스트레스도 받고. 아프고 나서 우울증이 왔는데, 그걸 치료하기에 골프보다는 등산이 더 잘 맞았어요. 산에서 멋진 풍경과 자연을 접하면서 우울증이 치유되었어요.

Q 블랙야크 도전 프로그램을 하고 있나요?

네, 느리지만 ‘명산 100’ 중에서 58개를 올랐어요. 백두대간 같은 장거리 종주를 할 정도의 체력은 아니라서, ‘명산 100’에 속하는 산 중에서도 경치 좋은 산 쉬운 코스 위주로 다니고 있어요. BAC 도전프로그램의 ‘섬&산100’이나 ‘명산100+’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완등이 첫 번째 목표는 아니에요. 즐겁게 산행하는 게 우선이고, 대상지를 찾을 때 ‘BAC 프로그램’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좋았던 산은 다시 가는 경우가 많아요.

Q SNS의 자기소개 글이 독특했어요. 보통 아픈 걸 감추기도 하는데 구체적인 병명까지 다 밝히는 게 색달랐어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신을 인터넷 상에 소개하는 이유가 있나요?

황희진씨의 인스타그램(@hwanzin2)에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산 타는 찌니(황희진/83년생) #뇌출혈 #지주막하출혈 #뇌수변병장애 #외상성뇌손상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뇌질환치료. #2018년 8월 17일 다시 태어나 1477일째 살고 있는 나. #4년째 접어드는 재활 일기. #세상을 오르다! #블랙야크 명산(58개) #블랙야크 플러스(24개) #블랙야크 섬&산(8개)’

제 병명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건, 이렇게 젊은 사람도 치사율이 높은 뇌졸중에 많이 걸린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모든 분들이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더 갖도록 하고 싶어서예요.

처음 재활할 땐, 제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다리를 절뚝거리고, 팔이 비정상적으로 젖혀지는, 불편한 모습이었어요. 불쌍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따가웠고, 아팠어요. 그래도 방에 숨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넌 안 돼”, “거기까지야”라고 말을 하니 더 오기가 생겼어요. 비정상이지만, 불편한 몸짓으로 떳떳하게 거리를 걷고, 공원을 걸으며 재활했어요. 부끄러워서 자신감을 잃을 뻔했던, 제 시행착오를 다른 환자들은 겪지 않게 하고 싶었어요. 뇌출혈 환자였음에도 이렇게 정상적으로 전국의 명산을 오르고 있다는 걸, 다른 환자들에게 보여주고, 자신감을 주고 싶었어요.

Q 다른 환자들이 SNS를 보고 연락해오기도 하나요?

연락이 자주 와요. 뇌출혈 수술 받은 20대 여성 분이 연락이 와서, 직접 만나기도 했어요. 그 분은 걸음이 불편해서, 집 밖으로 나가길 꺼렸어요. 사실 가장 두렵고 힘들었던 게 남들 시선이었어요. 그래서 ‘이 불편한 시선을 즐겨야 너가 극복이 된다’고 말해주고, 시내 번화가로 데려가서 걷게 했어요. 내가 수술 받고 난 후보다 훨씬 상태가 좋으니 일찍 일어날 수 있을거라 용기를 북돋아주었어요. 그 분 외에도 “어느 병원 다녔는지? 약은 어떤 걸 먹는지? 어떻게 재활했는지?” 묻는 쪽지가 많이 와요. 일일이 답장을 해주고 있어요.

Q 황희진씨 SNS 사진을 보면 몸에 달라붙거나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많아요. 이유가 있나요?

동기부여와 자신감 회복을 위해서예요. 누가 봐도 아픈 사람 같지 않잖아요. 회복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자신감을 찾고, 다른 환자들에게 동기부여도 해주고 싶었어요. 레깅스는 산행할 때 움직임이 편해서 즐겨 입어요.

Q 아팠던 이후에 바뀐 게 많은 것 같아요. 가장 크게 바뀐 게 뭔가요?

쓰러지기 전에는 일만 했어요. 장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동안 쉬는 날 없이 일에만 몰두했어요. 지금은 편안하게 내 인생을 즐기고 싶어요. 수술 후 2년 동안 죽을만큼 아팠고, 우울증이 너무 심했어요. 그런 저를 산이 도와줬어요. 산행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치유되었어요.

Q 재활 과정에서 BAC 도전프로그램과 앱이 도움이 되었나요?

물론이죠. 몸과 마음이 안개 속을 헤맬 때 나침반이 되어줬어요. 어떤 산을 가야하는지, 어떤 섬이 좋은지도 알려주었고, 정상에 올랐을 때 인증을 통한 성취감도 알려주었어요. 나 말고도 즐겁게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BAC매거진에 실린 재미있고 좋은 내용들도 도움이 되었어요.

Q 재활 과정에서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고통을 인정했어요. 고통을 참는 게 일상이라 안 아플 수는 없으니, 건강한 쪽을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아프면 아픈 데로 즐겁게 살아야지 안 아플 수는 없잖아요. 심할 때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내 몸을 칼로 자르고 싶었어요. 여전히 아프지만, 예전에 비하면 아픈 것도 아녜요.

Q SNS 팔로워가 1만2천 명이 넘는 만큼, 부작용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악플을 달지는 않나요?

당당하고 싶었어요. 뇌출혈 수술했던 부위의 사진도 공개했어요. 그랬더니, ‘혐오스럽다’는 식의 댓글들이 달렸어요. 산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면 ‘진짜 아픈 것 맞냐’는 댓글이 달렸어요. 음식 사진을 올리면 ‘환자가 그런거 먹어도 되냐’는 댓글이 달렸어요. 이런 댓글은 바로 삭제해요. 원래 제 성격이 낙천적인 편이라 스트레스 잘 안 받아요.

Q 명산 산행을 가면 어떤 코스를 선택하나요?

제일 싫어하는 게 최단 코스예요. 명산 100 완등을 최우선으로 하지는 않지만, 완등은 꼭 할 거예요. 기왕 산행하는 거 가장 경치가 좋은 코스를 택해요. 아직은 ‘명산 100’ 산행에서 실망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Q 산에서 위험했던 적도 있었나요?

2년 전쯤 산행 중에 뇌전증(간질)이 왔어요. 일종의 발작 같은 경련인데, 정신은 있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가만히 두면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데, 일행이 건드려서 30분 동안 의식을 잃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다른 약은 끊었는데 간질약은 먹고 있어요.

뇌전증이 오면 몸이 빠른 떨림 상태가 되요. 저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놀라게 되요. 이럴 때 주변에서 건드리면 의식을 잃거든요. 건드리거나 주무르지 말고 가만히 두면, 10분 정도 지나면 괜찮아져요. 뇌전증은 몸에서 신호가 오거든요. 그럴 땐 산행을 취소하고 집에서 약을 먹고 쉬어요.

Q 산악회 활동을 하나요?

별도의 산악회 활동은 하지 않지만, 지인들끼리 모여서 산에 다니는 걸 즐겨요. 그렇게 산행을 하며 알게 된 사람이 3년 만에 150명으로 늘었어요. 산에 열심히 다닐 때는 일주일에 5일을 산에 다녔고, 요즘은 3일 정도 다니고, 최소 주 2회는 산행을 해요. 워낙 자주 다니니 산행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된 사람이 많아요.

Q 명산 중에서도 어떤 더 산이 좋았나요?

경치가 좋은 산을 선호하다보니, 산과 바다를 같이 볼 수 있는 산이 좋아요. 바닷가의 바위산이 더 기억에 남아요. 팔영산과 월출산은 경치나 산세가 워낙 예뻐서 기억에 남아요. 한려해상국립공원 산도 다 예쁘고요. 그런 산을 가면 경치 보면서 천천히 걸어요.

가장 좋아하는 산은 영남알프스요. 지금 사는 곳에서 비교적 가깝고, 가면 속이 뻥 뚫려요.

Q 뇌졸중을 비롯한 모든 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산도 좋고, 바다도 좋고, 들도 좋아요. 자연 속에서 좋은 걸 많이 보면 몸과 마음이 치유가 되요. 불편한 몸과 걸음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히 문 밖으로 나오세요. 진짜 치유는 그때부터 시작돼요. 세상은 문 밖에 있어요.

글 신준범 월간山 기자 / 사진 주민욱 월간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