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학의 세계적 스타 학자인 헬렌 피셔(Helen Fisher) 교수가 그녀의 글이나 강연에서 항상 인용하는 한시가 있다.
"사랑" 학중에서도 그녀는 사랑의 콩깍지가 씌인 젊은 남녀의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fMRI) 기법으로 연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랑의 콩깍지가 씌인 남녀는 그 상대방의 어떤 특정한 모습이나 행위에 대해서 집착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애인이 버스에서 내릴 때 고개를 까딱하는 모습, 그녀가 미소 짓는 모습, 문자를 보낼때 집중하는 모습등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 특이하지 않은 모습이나 행동에 집착하고 머리에서 지울 수 없어 애 태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열병에 걸린 사람들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시라고 인용하는 한시는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원진(
元稹)
이 지은 "대돗자리" 라는 한시다.
대돗자리
나는 차마 그 대돗자리를 말아 치울 수 없네
당신이 오던 밤 그걸 펴던 당신모습 잊을 수 없네
대돗자리를 보면 떠 오르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에 돗자리를 걷어 치울 수 없다니 사랑의 가슴 앓이도 이 정도면 중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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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교수는 물론 이 시의 영역본을 인용했다.
I have so many different love poems that I like. I read love poems from around the world, but there is one by Xuan Chen which is I think in 10th century China, and it's called The Bamboo Mat.
And the reason I like the poem so much is because, you know, I study love, and I study the brain chemistry of love and one of the things that happens when you fall in love is that you focus on some tiny little aspect of the person that you're in love with. I mean you can just remember the way they cocked their head as they got off the bus, or just the way they smile at you across the dinner table, and you'll replay these moments.
Here's a poem from 10th century China that displays almost a universal characteristic about love.
I cannot bear to put away the bamboo sleeping mat;
The night I brought you home I watched you roll it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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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한시의 원문을 보고 싶었다.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나 보다 한해 먼저 정년퇴직한 중문학과 K교수가 생각났다.
나하고는 동숭동 문리대시절부터 절친했고 요새는 조금 뜸하지만 가족과도 자주 왕래했던 터이다. K교수가 찾아 주지 못한다면 한국에서는 찾을 수 있는 이가 없을 것이다.
얼마전 이것도 물어 볼겸 K교수와 점심을 같이 했다. 이 시를 금방 알아 보지 못한 것은 헬렌교수가 중국 시인의 영문 표기를 잘못했기 때문이었다. 며칠전 K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Xuan Chen 이 아니라 Yuan Chen 이라는 것이다. Y를 X로 잘 못 적어 놓았다는 것이다. Yuan Chen 은 원진
(元稹)
으로 당나라 시인이란다.
그런 연애시를 남길 만한 사람은 당나라 시인 원진밖에 없을 것 같아 X 와 Y의 오철을 추측했단다.
원문은 전화로는 불러 주기 어려우니 나중에 만나 전해 받기로 했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분당에 가는 길에 전화를 걸어 불러 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갑했다. 원래 난 인터넷 서칭의 명수다. 인터넷에서 찾아 보리라 다짐했다.
전화를 받던 날 인터넷 서칭을 했으나 원진에 대한 글이나 정보는 많이 있지만 이 시의 원문은 찾을 수 없었다. 원진의 대표시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오늘 다시 인터넷 서치를 했다. 결국 중국 사이트에서 이 시의 원문을 찾았다. 네이버엔 원문 한자가 표현되지 않아 그림으로 클립해서 올린다.
위의 두 글자는 2만자 옥편에도 나오지 않아 우리말 발음은 알 수 없고 그래서 그랬는지 그 두 글자를 아마도 같은 소리가 나는 흔한 한자로 바꾸어 놓은 듯한 원문을 다른 사이트에서 찾았다.
인터넷은 대단한 백과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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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참으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다.
원진에 대한 많은 글을 읽어 알 게 되었는데 그 중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원진과 설도의 연애사건이다.
원진이 감찰어사로 임명되어 사천지방에 갈 때 성도에서 11살 연상인 기녀이며 여류시인 설도(薛濤)를 만나 1년여 교류하며 열애에 빠졌다. 원진은 설도에게 함께 같이 살자는 약속을 하며 임지를 떠났는데 떠날 때 둥근 벼루를 반으로 나누어서 가졌다 한다,
그것은 다시 둘을 합쳐 둥그렇게 만들 날을 기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진은 집안에서 기녀와 사귄다고 힐란하자 그녀와의 약속을 깨고 만다.
설도는 원진을 그리며 평생 결혼을 않고 실연의 아픔을 많은 시를 써서 달랬는데 그 중의 하나가 춘망사 4수란다.
그 중 3수,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꽃은 바람에 시들어가고
만날 날은 아득히 멀어져가네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
는 그 유명한 가곡 "동심초"의 원전이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원진의 "대돗자리"의 주인공은 설도가 아니었을까?
원진의 사랑의 콩깍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벗겨졌지만 그 상대 설도는 꽁깍지를 평생 벗지 못하고 변절한 애인을 그리며 "동심초"를 부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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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초는 김소월의 스승인 안서 김억이 설도의 원전을 본따 노랫말을 짓고 김성태가 작곡한 가곡이다.
동심초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사랑의 가슴앓이에는 고금이 따로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