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시리아, 그리고 그 남쪽에 위치한 나라 요르단, 이 두 국가의 국경에 자리 잡은 국경없는의사회 요르단 람사 병원의 환자는 대부분 시리아 사람들입니다.
시리아에서 포탄을 맞고 총상을 입은 사람들 중 중환자만이 간신히 국경 너머로 이송되어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이 곳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정형외과의 이재헌 활동가는 2016년 4월부터 6월까지 국경없는의사회 외상 수술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시리아 국경이 보이는 요르단 람사의 밤공기 속에서 적은 이재헌 활동가의 일기는 아만자' 'D.P.' '내 멋대로 고민상담' 등 유명 웹툰 작품을 남긴 김보통 작가를 만나 웹툰으로 그려졌습니다.
웹툰은 매주 한 편씩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공개되었고, 27만명의 독자가 함께해 주셨습니다. 300명이 넘는 후원자들의 참여로 1100만원의 후원금이 모였습니다.
웹툰과 함께 국경없는의사회 웹사이트와 허핑턴 포스트 블로그를 통해서는 이재헌 활동가가 작성한 일기가 연재되었습니다.
분쟁을 겪고있는 환자들과 이 환자들을 살리기 위한 국경없는의사회 구호 활동가들의 하루하루를 김보통 작가의 웹툰과 원작이 되었던 이재헌 활동가의 일기를 통해 만나보세요.
1화 한국 의사가 요르단으로 떠난 이유
우리가 몰랐던 시리아 이야기,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그래서 일기를 적었다
우리는 특별한 순간을 보다 선명히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한다. 그 무언가는 사진이 될 수도 있고, 선물이, 편지가, 그리고 일기가 될 수도 있다. 분쟁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가로 활동한 경험이 나에게 특별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일기를 적었다.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내가 만난 팀원들과 환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일상을 지내며 눈을 돌리기 쉽지 않은 세상 너머에 구호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내 자신이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적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다이어리는 시리아 국경이 보이는 람사의 밤공기 속에서 적은 글들이다. 수필의 형식으로 글을 적어보았다. 세상에는 아직 수많은 암흑이 있고, 또 수많은 희망릴레이가 있다. 희망은 작은 관심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리아 분쟁지역에서의 다이어리가 누군가에게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희망의 끈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화 - 전쟁 속에서 그녀는 홀로 엄마가 되었다
“두 다리가 없어졌지만, 저와 저의 아이가 살았어요.”
지난 3월 말, 임신 말기의 몸으로 집 근처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에선가 날아온 폭탄이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지면서 두 다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아침 회진을 돌 때, 담요를 덮고 앉아 있는 모습은 여느 소녀와 다를 바 없었다. 앳된 소녀가 거의 만삭인 모습에서 다소 놀랐고, 그 아래로 우측 다리는 무릎 아래에서 그리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 위에서 절단된 상처를 보이는 모습에 안타까움의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의 여느 열 일곱 살과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시리아 남부의 그녀였다.
3화 - 조용한 응급실의 의미
전쟁터의 고양이 집사라니, 안어울리게 평화롭네.
어제 먹다 남은 치킨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그 중 몇 조각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다. 들고양이들 밥 주러 간다. 숙소 담장 안팎으로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대여섯 마리 된다. 선임 외과 선생님이 미션을 마치고 귀국하며 고양이 집사 자리를 나에게 물려주고 가셨다.
밤 9시 반, 스파게티와 바게트요리에 이어 달콤한 후식을 조금씩 맛보며 음악과 차를 음미하는 시간이다. 다소 쌀쌀한 저녁날씨지만, 밖에서 먼지 쌓인 탁구대(네트도 없고, 아무도 탁구를 치지는 않는다)를 식탁 삼아 둘러앉아 휴일의 느긋한 저녁시간을 즐기고 있다.
한 순간 둔탁한 괴성이 들렸다. 부움!!! 언덕너머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이다. 숙소에서 눈 앞에 멀리 보이는 언덕은 시리아와의 국경이다. 요르단의 람사에서 국경까지 5km, 국경에서 시리아의 다라까지 3km. 다라는 내전에 휩싸인 주요 도시 중의 하나이다. 첫 폭발음의 놀람이 가시기도 전, 5분 정도 지나서 한 번 더 같은 폭발음이 들렸다.
4화 - 수요일은 모래바람의 캠프로 간다
집 근처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는 자타리 캠프에 가는 날이다. 람사 병원에서 약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시리아 국경을 왼쪽으로 끼고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저 멀리 허허벌판에 옹기종기 나즈막한 컨테이너들이 보이는 지점이 있다. 그곳을 향해서 달리면 장갑차가 보이는 검문소에 도달한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하얀 조끼가 신분증과 다름없다.
이렇게 평온한 모습인데, 캠프에 오기 전에 들은 한마디가 내 눈 앞에 이렇게 펼쳐지니 나의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만든다. '자타리 캠프가 2012년에 생겼으니 이제 4년이 되어가요. 4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마을이 차차 형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네요.' 4년. 그 기간 동안 이 사람들은 이 허허벌판 캠프의 경계를 허가 없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화 - 라면보다 더 좋은 것
라면보다 반가운건 새로운 활동가에요!
내가 람사 미션에 합류했을 때 해외파견 멤버들이 12명이 있었는데, 모두 몇 년을 국경없는의사회와 일을 했지만, 한국 멤버와 일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미션에 한국에서 멤버가 한 명 더 오니 꽤나 신기해한다.
의미 있는 순간인데, 셋이 함께 모이지 않을 수 없다. 암만에 있는 최정윤 약사님을 람사로 초대하였다. 최정윤 약사님은 탄자니아에서 코이카(KOICA)활동 시절에 옆 지역에서 활동했었기에 이렇게 5년만에 요르단에서 만나는 게 더욱 감회가 새롭다.
6화 - 병원을 비워라, 침상을 확보하라
북적이던 병실에 빈 침상이 더 많이 보이고 병동의 환자가 반으로 줄었다. 우리는 그렇게 슬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 회진을 시작하기 전 니키가 사무실로 부른다. 환자 명단을 앞에 주욱 펼쳐놓으며, 조금이라도 퇴원 가능한 환자가 누구누구인지 알려달라고 한다. 대체 이렇게 갑자기 서두르는 이유가 뭔가 싶어서 물어보니, 지금 상황이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국경너머에서 정세가 불안정한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엊그제 엄포성 폭탄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시리아 남부의 정국이 어떻게 진행될 지가 아직 많이 모호한 상태여서 이에 대한 공식적 공지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현재 모든 병상이 차 있기 때문에 대량사상자가 오면 감당할 수가 없으니 병상을 최대한 비우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7화 - 국경 없는 행복한 건축가 호헤
의사인듯 의사아닌 의사같은 비의료 분야의 활동가들
"So gooooood"
호헤는 건축가이다. 행복한 건축가이다. 덥수룩한 머리, 정리되지 않은 수염, 털털한 옷차림의 호헤, 그리고 늘 ‘So Goood’ 하며 특유의 억양으로 너스레한 웃음을 지는 호헤가 좋다.
호헤와 같은 ‘의사’들이 국경없는의사회에 있다.
로지스티션(식수와 위생, 건축, 전기, 통신, 컴퓨터 등의 다양한 분야)과 행정담당자로 이루어지는 비의료 분야의 활동가들이 40%이상을 차지하며, 의료가 절박한 곳에 의료를 전달한다. 구호활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비의료 분야 활동가의 역할은 의료진 만큼이나 중요하다.
8화 - 와야 할 환자가 오지 못한 밤
이송중이던 환자 모두 응급차안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오기로 한 환자들이 도착하지 못한 채 두시간이 흘렀다. 수술실엔 적막이 흐르고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한다.
9화 - 다친 사람만 넘을 수 있는 시리아 국경
람사병원에서의 많은 만남은 포옹과 눈물로 이어진다.
시리아에서 다쳐 요르단 국경을 넘을 때 대개 환자만 허가를 받는다. 구급차에 실려 있는 아이 옆에 함께 올라있는 엄마일지라도 종종 함께 넘어오는 것을 허가 받지 못한다.
마지막화 - 전쟁은 아이들이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전쟁은 아이들이라고 피해가지 않아, 그래서 더 가혹하지. 우리는 아마 다른 어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속죄를 하고 있는거야 아니 어쩌면 우리가 대신 그 벌을 받고 있는건지도.
람사 병원에서의 2개월이 금새 지났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갖는 신선함과 특별함이 고스란히 담긴 미션이다. 분쟁 지역에서의 활동은 오지에서의 활동과는 사뭇 달랐다. 긴장으로 시작했지만, 팀원들과의 보람찬 추억을 담고 간다.
Credits:
제작 - 김보통, 손효림, 권유리, 박현수 제공 - 국경없는의사회